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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경비 지휘는 국정원이 … 뿔난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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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의 안전 통제 권한을 둘러싸고 갈등에 휩싸였다. 최근 국정원장이 평창 겨울올림픽의 안전과 대테러 업무 등을 총괄 지휘하는 안전대책관리본부장으로 잠정 결정되면서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초 국정원·경찰청·군·법무부·해경·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국정원장이 평창 올림픽 기간 중 안전대책관리본부장을 맡기로 잠정 합의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평창동계올림픽특별법 시행령(안)’을 만들어 각 기관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이날 “시행령(안)을 재검토해 줄 것을 각 관련 기관에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컵 등 각종 국제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안전대책관리본부장은 국정원장 몫이었다. ‘국정원장이 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한다’는 내용의 국가대테러활동지침(대통령 훈령)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 유치 단계에서 런던·시드니·밴쿠버 등 대다수 올림픽 유치국이 경찰 최고책임자를 안전 통제의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해 지난해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실사 당시 “경찰청장이 안전대책관리본부장을 맡는다”고 IOC 측에 알렸다. IOC 실사 과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IOC 실사단 측에서 안전 통제 책임자 이름도 물어봤다.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이 IOC 실사단 앞에서 인사까지 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엔 경찰 측에서 경찰청장 책임하에 TF 형태의 가칭 ‘평창동계올림픽 안전대책기획단’을 구성한다는 방침도 나왔다.

 그런데 지난달 관계기관 회의에서 국정원장을 안전책임자로 결정하면서 기존 결정이 정면으로 뒤집힌 것이다. 당시 회의에선 국정원이 “평창은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깝다. 북한이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지휘부는 일단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은 “‘수사권 독립’에 이어 ‘경비권 독립’도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경비 업무를 10년 이상 해 온 한 경찰은 “수사권 조정이 수포로 돌아간 과정과 마찬가지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경찰이 치안업무조차 통제할 권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이동영 대불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 나라의 치안을 경찰이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부 노출을 삼가야 할 국정원이 치안업무 전면에 나서는 건 상식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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