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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백화점 "한국말하는 손님 본 지 오래됐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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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말 하는 손님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서울 도심의 유명 백화점 명품관 직원들이 요즘 주고받는 얘기다. 휴일인 7~8일 백화점 명품관은 손님보다 직원이 많을 정도로 한산했다. B명품 매장의 매니저는 “아무리 전화를 하고 판촉물을 보내도 고객이 미동조차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서 파는 양복은 연초까지 월 열 벌 팔렸지만 지금은 네댓 벌 팔기가 어렵다. L매장의 매니저는 “그나마 중국·일본 관광객이 있어서 겨우 유지한다”며 “국내 고객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자가 지갑을 닫았다. 상류층 소비가 줄면 서비스·제조업 매출이 늘어날 수 없다. 서민의 벌이도 좋아질 리 없다.

 8일 통계청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중 소득 상위 10%(월 평균 소득 917만2045원)는 지난해 월 401만7470원을 소비했다. 1년 전보다 월 7만8705원(-1.9%) 줄었다. 이들의 소비가 줄어든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2002년 카드채 사태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물가(4%)가 크게 올랐고, 상류층 소득(6.2%)이 늘어난 걸 감안하면 실제 씀씀이는 통계보다 훨씬 더 적어진 셈이다. 이명박 정부 4년간 부자 소비도 연평균 1.6% 느는 데 그쳤다. ‘부자세금’이라는 종합부동산세 등을 도입한 노무현 정부(연 5.4%) 때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영삼(8.2%)·김대중(4.9%) 정부 때보다도 크게 낮다.

 앞으로도 부자 지갑이 열릴 기미는 없어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분기 소비자 태도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운데 “미래 소비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21.6%에 불과했다. 이은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가 갈수록 침체될 것”이라며 “주식·부동산 시장 침체가 고소득층의 지갑을 더 닫게 했다”고 분석했다.

 경제 상황 탓만 할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정부와 비교할 때 성장 둔화(-1.21%포인트)보다 부자 소비 감소(-3.8%포인트)가 더 크기 때문이다. 조동근(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앞세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부 정책이 기업 때리기로 흐르면서 소비 심리를 움츠러들게 했다”고 진단했다.

 부자의 닫힌 지갑은 상류층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내수를 위축시켜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설문조사에서는 42.3%가 “경제 회복을 앞당기려면 내수 경기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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