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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 높이 ‘자라’ 옷박스 2주면 동나 … 스페인 위기? 우린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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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자라’ 브랜드로 이름난 스페인 패스트패션 업체 인디텍스는 전 세계 직영 매장에서 받은 주문 물량을 매주 2회 비행기로 신속하게 배송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사진은 스페인 라코루냐의 인디텍스 본사 내 자라 공장 전경. [라코루냐(스페인) 로이터=뉴시스]

2008년 이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극심한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스페인. 실업률이 25%에 육박하는 와중에도 채용을 늘리며 ‘나 홀로’ 성장을 거듭하는 스페인 기업이 있다. 스페인 북서부의 작은 항구도시 라코루냐에 본사를 둔 패스트패션 업체 ‘인디텍스’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자라(ZARA)’ 브랜드의 모기업이다.

 지난달 27일 현장학습을 나온 KAIST의 EMBA(이그제큐티브 경영학석사) 과정생 30여 명과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북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디텍스 메코 유통센터를 방문했다. 전문가들은 인디텍스가 짧은 시간 내 고성장이 가능했던 요인으로 시장의 반응을 빠르게 감지하는 디자인 시스템과 소량생산한 제품을 시장에 신속히 공급하는 물류 시스템을 꼽았다. 메코 유통센터가 바로 자라의 물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내 9곳의 유통센터 가운데 마드리드와 가장 가까운 메코 센터는 16만㎡(약 4만8500평)의 널따란 부지 위에 전 세계로 보내질 자라와 자라홈 제품이 잠깐 머무르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인디텍스의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 헤수스 에체바리아는 “기존 의류업체가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제작 방식을 고수했다면 우리의 시발점은 고객”이라며 “매일매일 고객으로부터 들어온 피드백과 매장에서 어느 것이 제일 많이 팔렸는지 하는 매출 분석을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고객에게 전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우리의 핵심 역량”이라고 소개했다.

 메코 유통센터 내부는 밖에서 보이는 정적인 모습과 달리 매우 긴박하게 움직였다. 복잡한 열차 선로를 연상시키는 긴 라인에 걸린 같은 종류의 옷들이 바코드에 저장된 유통정보에 따라 한군데로 모인 다음 50개 단위로 종이박스에 포장돼 약 10층 높이의 선반에 쌓였다. 항공기에 옮겨질 시간이 되면 로봇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제품을 정확하게 실어날랐다. 매장에서 주문을 받아 제품을 전달하기까지 유럽의 경우 평균 24시간, 북·남미나 아시아의 경우 최대 48시간이 걸린다. 각 매장에서는 2주마다 제품이 완전히 바뀐다.

 유통센터를 지켜본 윤여선 KAIST EMBA 책임교수는 “가장 적절한 규모의 투자를 통해 82개국으로의 수출 물류를 깔끔하게 완성한 시스템”이라며 “국내 기업이 패스트패션으로 성공하려면 디자인뿐 아니라 이 같은 물류 기지 노하우까지 습득해야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체바리아에게 “스페인 경제위기를 피부로 느끼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경기가 좋지 않지만 82개국 가운데 아시아와 남미 쪽 신흥국가에서는 가파른 성장을 계속하는 중이다. 글로벌 전략에 기초한 밸런스(balance)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텍스의 진정한 성공 요인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에체바리아는 “정직”이라고 답했다. 그는 “고객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직하게 다가서는 게 중요한 덕목”이라면서 “제품에서 정직함이 느껴지면 고객은 평생 우리를 믿고 찾게 마련”이라고 했다.

 인디텍스는 1975년 라코루냐에 첫 자라 매장을 연 뒤 지금은 전 세계 82개국에서 풀앤베어 등 다양한 브랜드로 552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137억9300만 유로(약 19조4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은 하락하면서 증시 또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인디텍스 주가만은 따로 놀며 지난달 1일 통신사 텔레포니카를 제치고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다양한 종류의 옷들을 소량 생산해서는 잠깐 판매하고 거둬들이는 방식이다. 한 회사가 의류의 기획부터 유통까지 맡아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유행에 맞는 옷을 싸고 빠르게 공급하며 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한편으로 옷을 싼값에 샀다가 금방 버리는 소비 풍조를 낳기도 했다. 스페인의 자라, 미국의 GAP, 일본의 유니클로 등이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업체다. 국내에선 지난 2월 문을 연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가 뒤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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