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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초월한 인류애, 이수현씨 스토리 녹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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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SF·추리소설 『제노사이드』의 저자 다카노 가즈아키. 도쿄 현지에서 만난 그는 “10여년 전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할 때 한국 유학생과 친분을 맺었다”며 “문화는 달라도 한국인이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봉준호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사진 황금가지]

여기 흥미로운 가설 하나.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지성이 아니라 잔학성 때문이다.’ 모든 생물 중 인간만이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행하므로, 일찍이 지구상에 있던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에 의해 멸망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달 번역 출간한 일본의 SF·추리소설 『제노사이드』는 이 가설을 내세운다. 인류에 대한 불신의 기운이 가득한 이 책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시름하던 지난 한 해동안 40만부가 팔려나갔다. 5일, 일본 도쿄에서 저자인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48)를 만났다. 2001년 『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내놓는 작품마다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는 인기 작가다.

 『제노사이드』는 그가 6년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오랜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콩고에서 인류보다 진화한 ‘초인류’가 태어나고, 미국 정부는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일본 과학자 겐토와 미군 병사들은 미 정부를 저지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양측의 두뇌싸움은 국적을 초월하며 블록버스터급으로 펼쳐진다. 겐토의 가장 큰 조력자로 한국인 과학자가 등장하는데,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고 이수현씨가 실제 모델이다. 가즈아키는 “각종 역사 및 과학 자료를 찾느라 집필에만 2년 반이 걸렸다”고 했다.

 -인류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것 아닌가.

 “인간은 집단을 만들어 생활하는데, 집단과 집단은 반드시 충돌하게 돼있다. 우리가 침팬지나 고릴라를 보면서 여러 습성을 관찰하듯, 인간의 이런 성향을 제3자의 시각으로 그리는 것이 이 책은 컨셉트다. 국적이 다른 것만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이수현씨처럼 국적을 초월해 남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얼굴을 통해 인간의 전체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초인류’를 없애려는 인물로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

 “2001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이 참고가 됐다. 처음엔 대통령을 굉장한 악인으로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인물을 연구하면 할수록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이 주어지면 보통 사람도 전쟁을 명령할 수 있다는 것에 인간의 무서움을 느꼈다.”

 저자는 난징대학살과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도 썼다. 선조의 악행을 쓴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콩고·르완다·독일 나치의 학살은 쓰면서 일본이 한 것을 안 쓰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 이수현씨를 모델로 한 데 대해선 “닮고 싶은 인물이라 소설에 넣었다”며 “미국 유학시절 한국 친구들에게 ‘한국인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미운)정(情)이란 표현을 쓴다’고 하기에 놀랐다. 주인공 겐토는 한국인의 정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인간의 대결로 시작했던 소설은 제노사이드를 하려는 인류와 인류를 제거할 능력을 지닌 초인류의 싸움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 키는 결국 인간이 쥐고 있다. 저자는 결말에 대해 “초인류가 평화적인지 아닌지는 일부러 설정하지 않았다. 인간이 계속해서 잔학한 일을 한다면 인류를 멸하게 할 것이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면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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