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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77) 쑨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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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 일본 요코하마(橫濱)에 머무르던 쑹자수(뒷줄 왼쪽 둘째) 일가. 앞줄 왼쪽부터 3남 즈안(子安), 차녀 칭링, 부인 니꾸이전(倪桂珍), 장녀 아이링. 뒷줄 왼쪽 첫째는 차남 즈량(子良), 오른쪽 첫째가 아이링의 남편 쿵샹시. 장남 즈원(子文)과 막내딸 메이링은 미국 유학 중이었다. [상하이 孫中山故居 소장]

1892년 가을, 선교사 쑹자수(宋嘉樹·송가수)는 상하이에서 쑨원(孫文·손문)을 처음 만났다. 만나는 횟수가 늘면서 쑨원의 혁명사상에 심취했다. 이듬해 1월, 둘째 딸 칭링(宋慶齡·송경령)이 태어났다. 쑹자수는 쑨원에게 강보에 싸인 딸을 보여줬다. 20년 후 황당한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쑹자수는 사업에도 소질이 있었다. 선교 활동을 하며 인쇄소를 차렸다. 중국어판 성경을 찍었다. 문맹 못지않게 독서 인구도 많은 나라였다. 글 좀 읽었다는 사람들 사이에 “홍루몽 못지않게 재미있는 책이다. 등장 인물이 많지만, 다들 개성이 독특하고 짜임새도 뛰어나다. 시편은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경 못지않다”는 소문이 퍼졌다. 찍는 족족 팔렸다. 돈이 쌓이자 밀가루 공장을 세우고 미국산 기계 대리점도 운영했다. 거부(巨富) 소리를 들었다.

쑹자수는 쑨원의 혁명사업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명문학교의 학부형 되는 게 소원이다 보니 자녀들 교육에도 마찬가지였다. 3남 3녀를 모두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쑹칭링도 열네 살 때 미국행 배를 탔다.

1913년 8월, 6년간 유학 생활을 마친 쑹칭링은 귀국 도중 일본에서 아버지와 합류했다. 쑹자수는 망명 중인 쑨원에게 칭링을 데리고 갔다. 설마 했겠지만, 딸을 쳐다보는 대혁명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쑨원은 툭하면 쑹자수에게 기침을 쿨럭이며 다 죽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했다. 그럴 때마다 쑹자수는 병간호를 위해 칭링을 쑨원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칭링이 언니 아이링(宋<972D><9F84>·송애령)도 만날 겸 해서 가보면 크게 아픈 사람 같지도 않았다.

쑨원의 고문이었던 호주 출신 신문기자 도널드에 의하면 쑨원은 비서로 있던 쑹자수의 큰딸 아이링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고 한다. “쑨원은 쑹아이링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농담이 아니라 아주 진지했다. 부인과는 어쩔 심산이냐고 물으면 이미 이혼을 요구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보기엔 큰일 날 사람이었다.”

아이링이 공자의 후손으로 알려진 쿵샹시(孔祥熙·공상희)와 결혼하자 쑨원은 한동안 “아이링이 고리대금업자 놈에게 시집갔다”며 분통을 터트려 주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쿵샹시는 은행과 전당포의 중간쯤 되는 전장(錢莊)집 아들이었지만 고리대금업자는 아니었다. 도널드의 기록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쑨원이 칭링에게 영문비서 일을 부탁하자 쑹자수는 선뜻 수락하고 귀국했다. 사실 쑨원은 영문비서가 필요 없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할 뿐 아니라 측근에 영어 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지 칭링도 쑨원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동생 메이링(宋美齡·송미령)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요즈음처럼 즐거운 나날을 보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꿈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다. 나는 혁명운동의 중심에 접근해 있다. 나는 중국을 도울 수 있다. 쑨원 선생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한다.” 쑨원은 가는 곳마다 칭링을 데리고 다녔다.

산책을 좋아하던 쑨원이 후한민(胡漢民·호한민), 랴오중카이(廖仲愷·요중개), 다이지타오(戴季陶·대계도)와 유람을 떠난 적이 있었다. 쑹칭링이 빠질 리 없었다. 하루는 쑨원이 등산을 가자고 하자 다들 따라 나섰다.

나이가 가장 어린 칭링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칭링이 정상에 오른 것을 본 쑨원이 바로 뒤에 오던 랴오중카이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랴오중카이는 눈치가 빨랐다. 몸을 돌려 사람들을 데리고 하산했다. 그날 따라 산속에 유람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다.

쑨원과 칭링은 오밤중에 숙소로 돌아왔다.(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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