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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나치게 용감한 녀석들 그대 이름은 술 먹은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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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술 먹은 개.’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개에게 직접 술을 먹여보지 않아서 개가 술을 먹으면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술 취해 경찰 허벅지를 깨문 여자도 있는 걸 보면 개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나도 거의 개 될 뻔했다.

 술 약속이 있는 날은 늘 차를 양평에 놔두고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로 출근한다. 그날도 술 몇 잔 걸치고 중앙선 기차를 탔다. 덕소에 내려 갈아타려고 기차를 기다리다가 그만 벤치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다행히도 남편의 전화벨 소리에 깨어 정신 차리고 기차를 타고는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다. 술에 취해 벤치에서 잠을 자면서도 가방은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던 것만 간혹 기억날 뿐 다른 건 영 백지다. 앞으로는 감당 못할 만큼의 술은 사양하련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뒤에 줄로 꽁꽁 묶어진 채. 지게 위에 거적 덮어 무덤으로 메고 가니. 억세 속세 떡갈나무 은백양이 우거진 숲 속에서… 그 누가 날 보고 한잔 먹자 하리오.’ 조선조 14대왕 선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강 정철의 그 유명한 장진주사(將進酒辭)의 일부다. 꽃을 꺾어 수를 세어가며 술을 먹자고 한다. 음주에 대한 탐닉 그리고 허무주의와 더불어 사대부들의 풍류의 미학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시다.

 술은 인류 역사 이래 인간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나친 음주는 자신에겐 독이 되고 남에겐 개가 된다. 주취폭력. 남의 집 현관문을 발로 차고 관공서 가서 행패 부리고 이제는 살인까지. 도를 넘어 심각하다. 지난 4일 서울 강동구 반지하 자택에서 술 취한 남편이 조선족 아내를 방에 가둬놓고는 흉기로 살해했다고 한다. 결국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검거되었다는데. 오랫동안 직업이 없는 남편에게 생활비를 대주던 부인을 찔러 죽이고 나서 그 남편 입에서 나온 말이 “술에 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였다니. 술 먹은 개를 넘어 그는 살인병기였던 거다.

 지난 한 달 주취폭력으로 단속에 걸린 사람이 서울에서만 100명이 넘는단다. 그동안은 ‘술김에 해서 기억이 안 나’ 하면 쉽게 용서해 주었다. 당연히 걸린 사람 대부분이 상습범이다. 용서는커녕 가중 처벌이 맞는 거다. 이번 기회에 두 번 다시 못하도록 엄중 처벌하자.

 술 마시고 운전하면 달리는 폭탄이라 하듯이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걸어 다니는 폭탄이다. 술로 인해 자기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 운전을 하건 폭력을 휘두르건 똑같은 폭탄이다. 꽃을 꺾어, 마신 잔을 세어가며 마시든지, 무진무진 먹자며 풍류를 즐기든지. 다 자기 선택이다. 어쨌거나 남에게 폐는 되지 말자. 통계적으로 비 오는 날 술집에 손님이 더 많다는데 계속되는 장마에 여기저기 ‘개’ 되는 사람 많을까 걱정이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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