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Higgs boson)를 찾는 것은 전세계 물리학자들에겐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숙제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표준모형 이론에 나오는 17종의 입자 중 오직 힉스입자만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세계 물리학계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4일(한국시간 기준) 호주 멜버른 국제고에너지학회(ICHEP)에서 힉스 발견을 선언할지에 주목해왔다. 표준 모형의 마지막 퍼즐 조작이 맞춰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CERN은 단일 기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가속기로 힉스입자를 찾고 있다. CERN은 이날 “힉스입자로 보이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지만 발견을 공식화 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보다는 진전됐지만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본지 6월 4일자 2면>본지>
125~126 GeV (기가전자볼트) 질량대에서 새로 발견한 입자가 힉스가 아닐 확률은 0.00006%(5시그마)로 희박하다. 그래도 CERN은 '힉스 발견 선언'을 다시 미뤘다. 데이터를 더 모아 분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발표는 CERN이 지난해 12월 95~98%(1.9~2.3시그마, 시그마는 표준편차)의 확률로 힉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힌 데이터 보다 그 신뢰도가 아주 높아졌다. 물리학에서 새로운 입자가 발견됐다고 선언하려면 5시그마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번 발견은 그런 조건은 충족한다.
힉스를 찾기 위한 CERN의 두 연구팀 중 하나인 CMS의 한국팀 대표인 서울시립대 박인규 교수는 “새로 발견한 입자는 힉스의 많은 특징을 나타내고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오래 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찾았는데 하필이면 쌍둥이 형제(이번 발견한 힉스 추정 새로운 입자)가 나타나 그 중 누가 진짜 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CERN이 발견 선언을 하지도 않을 것이면서 굳이 지난해 말에 이어 중간 발표를 한차례 더 한 이유는 유럽의 경제 위기와 연관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유럽의 한 두 나라가 "별다른 성과가 없다"며 CERN 지원금을 못내겠다고 한다면 그 영향이 도미노처럼 다른 나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bpark@joongang.co.kr
☞힉스입자=137억 년 전 무한대의 에너지로 우주가 대폭발(빅뱅)할 때 순식간에 태어났다 사라져 버린 입자다. 표준모형에 나오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따서 ‘힉스입자’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한국 과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