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화물연대 눈치 보느라 택배망 왜곡 방치하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가영
경제부문 기자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도입하려 했던 자가용 화물차 신고포상금제(‘택배 카파라치’)의 시행이 연기된 것이다. 서울시는 2일 “(신고 대상인) 자가용 화물차가 너무 많아 관련 조례안 상정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조례가 확정돼 1일자로 시행이 예고됐던 경기도 역시 예산 부족 등을 들어 시기를 내년 초로 미뤘다. 택배 카파라치 도입이 택배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시민들의 우려에 서울시와 경기도가 손을 든 셈이다. <중앙일보>6월 26일자 E1면>

 코앞에 닥쳐올 것 같던 택배 대란은 막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현재 운행 중인 택배 차량의 41%가 자가용 화물차이고, 이들의 영업행위가 불법인 만큼 언제고 또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도 시행을 연기했을 뿐 무효화한 건 아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화물연대가 파업을 하며 ‘화물차의 과잉 공급’을 문제삼자 이듬해 정부는 화물차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이후 8년 동안 화물차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택배업은 세 배 이상 성장했다. 차량 공급이 달리자 허가받은 노란 번호판이 아닌 흰색 번호판을 단 자가용 화물차의 불법 영업이 늘어났다. 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느슨하게 단속하는 식으로 묵인해 줬다. 화물차 허가를 내줄 경우 화물연대가 반발할 게 걱정돼서였다. 대신 일반 용달차를 택배차로 바꾸는 ‘전환제’와 기존 화물차의 번호판을 살 수 있는 정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화물차 증차’라는 정답이 있는데도 정부가 애써 다른 답만 찾는 사이 자가용 택배는 허가받은 차량만큼이나 늘었고, 이제는 이들이 없으면 택배망 전체가 흔들릴 지경에 이르렀다.

 수년간 일반 화물차 허가가 나지 않자 특수화물차 허가를 받은 뒤 서류를 위조해 일반화물차 번호판을 교부받아 거액에 넘기는 신종 범죄까지 등장했으며 선의의 피해자도 생겨났다. 인천에서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이무용씨는 최근 본지에 전화를 걸어 “자가용으로 영업하다 서너 번 단속돼 수백만원의 벌금을 낸 뒤 900만원을 들여 영업용 번호판을 샀다. 택배 대란을 우려해 자가용 화물차를 그대로 둔다면 나 같은 사람은 뭔가”라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불법을 용인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정부는 올 초 화물차 증차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8년을 돌고 돌아서야 알고 있던 정답을 써낸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수급예측을 통해 화물차 증차에 나서야 한다. 자가용 택배 기사들에게 붙여진 ‘불법’ 딱지를 이제는 떼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