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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짝퉁' 샤넬백, 회사 들고 갔다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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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복제 위주였던 짝퉁 시장은 최근엔 식품과 중저가 브랜드로 확장되고 있다.사진은 위에서부터 구찌 가방, 샤넬 핸드백, 혼마 골프 드라이버, 카스 캔맥주, 양 주헤네시와 롤렉스 손목 시계. 왼쪽이 정품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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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사봤다. 구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다. 모양도 그럴 듯하고 정품과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짝퉁(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 얘기다. 수천만원대 명품 가방을 거울에 비춘 듯 정교하게 베낀 수백만원대 ‘미러(mirror)급’ 짝퉁도 있고, 짝퉁인지도 모르고 무심코 사서 쓰는 열쇠고리도 있다. 이렇듯 짝퉁은 우리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 그들은 왜, 무슨 생각으로 짝퉁을 사게 됐을까, 중앙SUNDAY에서 짝퉁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를 취재했다. 그리고 독자들께 퀴즈 하나를 낸다. 이 기사의 양옆으로 보이는 명품 모음 사진 중 한쪽은 진품이고, 한쪽은 짝퉁이다. 과연 당신은 짝퉁을 구별해낼 수 있을까. (답은 오른쪽 사진 아래)

짝퉁을 산 이유와 사정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명품 사용으로 누릴 수 있는 일정한 효과를 기대하고, 나아가 은근히 즐긴다는 점은 같았다. “이 정도의 물건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 명품을 착용한 나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이다.
 
과시욕보다 합리적 소비 ,실속형
짝퉁이 진품보다 싸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한다. 적어도 회사원 홍모(38)씨의 경우는 그랬다. 그는 “국산 브랜드 구두가 어느 날 갑자기 25만~30만원이 됐다. 솔직히 과하다고 생각한다. 명품을 갖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검증된 디자인의 구두를 7만~10만원 사이에 살 수 있어 이태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태원에 단골 짝퉁 구두 거래처가 있다. 지난 몇 년간 이곳에서 철마다 구두를 사서 신고 다녔다. “최고의 품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국내산 신발 한 켤레 값으로 세 켤레를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홍씨의 계산이다. 특별히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당연히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회사 동료들과 이태원에서 회식하고 단체로 구입한 적도 있고, 친구들에게 소개한 적도 있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함께 와서 사 드린 적이 있는데 많이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누군가를 속인다는 생각을 했거나, 나쁜 짓이라고 여겼으면 혼자 몰래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모(38·회사원)씨도 “명품과 똑같아서 산 게 아니라 품질과 가격을 보고 샀다”고 말했다. 그는 지갑과 벨트 등 소품을 주로 구매했다. 필요하지만 큰돈을 지출하기 아까운 아이템들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일명 프라다천으로 만든 짝퉁 가방을 사서 기저귀 가방으로 사용한 경험도 있다. 그는 “싸구려 같아 보이지 않고 튼튼하면 짝퉁이라도 그냥 산다. 진짜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아무도 대놓고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실속형 짝퉁 소비자는 명품에 대한 정보와 열망이 상대적으로 적은 집단이다. 과시욕보다는 돈을 절약한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도 짝퉁을 통해 명품이 주는 즉각적인 효과를 맛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를 명품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김모(40·회사원)씨는 “친척이 짝퉁 샤넬백을 선물해 망설이다가 회사에 들고 오니 명품족인 선배가 ‘무리했네’라며 부러워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드니 가짜도 진짜로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좀 으쓱한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유행 타는 물건은 짝퉁으로,양다리형
주부 박모(30)씨는 명품에 대해 빠삭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매의 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집이 넉넉해 어릴 때부터 명품도 많이 접해본 편이다. 그는 “이만큼 안목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옷장엔 진짜 명품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살까 말까 망설이는 아이템들은 짝퉁을 구해 부담없이 쓰고 처분한다. 명품이라도 시즌이 지나면 바로 애물단지가 되는 물건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유명 예술가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디자인일수록 언제 나온 것인지 확실하게 티가 나기 때문에 한 철 이상 쓰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씨처럼 명품의 실구매자들은 짝퉁 소비도 상당했다. 패션업계 종사자 안모(35)씨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제품이 잘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이태원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씨는 “가죽 가방과 구두는 진품을, 지갑은 짝퉁을 사서 사용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 2009년 구입한 ‘특A급’ 루이뷔통 에나멜 장지갑은 만져보기 전엔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며 “지갑 하나에 60만원이나 써야 하나 망설이던 중 짝퉁을 샀다”고 말했다. “가죽에 새긴 로고의 눌림 정도만 미세하게 달랐을 뿐 완벽했다”는 게 안씨의 평가다.

10년 동안 이태원에서 짝퉁을 판매해온 김모(45) 사장의 증언도 비슷하다. 김 사장은 “진품을 사도 2년 정도 지나면 유행이 바뀌기 때문에 적당히 섞어 쓴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나온 루이뷔통 가방엔 휴대전화를 넣는 자리가 있었다. 이 가방엔 요즘 나온 스마트폰이 안 들어간다. 업체들이 최신 기기에 맞춰 신제품을 자꾸 내놓기 때문에 명품에 민감한 사람들이 짝퉁을 사러 이태원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태원 업자들은 관광객을 선호한다. 위험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좋은 짝퉁’을 찾는 내국인도 ‘우수 고객’으로 분류된다. 단골이 되면 입소문을 내주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이태원의 한 업소에서 에르메스 컬러 지갑과 똑같은 제품이 나왔다는 정보가 돌아 명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구입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안씨는 “루이뷔통 스피디백(이 가방을 든 사람을 3초 만에 한 명씩 본다고 해 ‘3초백’으로도 불린다)은 태닝(tanning·업계에선 사용정도란 뜻으로 통용)이 되는 정도를 모방하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즘엔 이것도 똑같이 맞춘 것도 많다”고 말했다.
 
모임 때마다 같은 가방 들기 싫어 , 체면형
주부 김모(68)씨는 명품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나이 들면 샤넬백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주변의 부추김에 몇 년 전 목돈을 들여 샤넬백을 장만했다. 그는 “솔직히 돈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 취향도 아니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었다. 모임 때마다 매번 같은 가방을 들고 가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시누이와 함께 이태원에 가서 신상품을 장만했다. “30만원이나 주고 가짜를 사는 것이 찜찜했다. 명품에 대해 잘 아는 시누이의 말에 그냥 사긴 했는데 누가 가짜라는 걸 알면 굉장히 창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60대 이상의 여성 중엔 이런 경우가 많았다. ‘계급의 상징’처럼 굳어진 특정 핸드백을 들지 않으면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초라해지는 경험을 한두 번씩은 겪게 되기 때문이란다. 아들의 결혼을 앞둔 강모(64)씨도 전형적인 체면치레형 짝퉁 소비자다. 명품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품위 유지’를 위해 어쩔수 없이 짝퉁을 구입한다. 그는 “교회, 백화점 등 또래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신경을 써야 한다”며 “솔직히 나도 상대방의 생활 형편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면 가방을 먼저 보게 된다”고 고백했다.이 밖에 부인이 명품 백을 사달라고 해서 남대문시장에서 핸드백을 산 신모(52)씨. “남대문에서 진짜와 똑같다는 핸드백을 사서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백을 애지중지하고 있어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딸이 짝퉁이라고 의심하고 있어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놓았다. 남성 짝퉁 구매자 중에는 이런 유형이 많았다. 이 때문에 짝퉁을 선물받은지 모르고 명품 매장에 수선을 맡겼다가 뒤늦게 들통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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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란...
어떤 상품의 모조품을 속되게 일컫는 말. 1990년대 말 ‘가짜’를 뜻하는 10대의 은어였던 ‘짝퉁’이란 단어는 이제 명품의 모조품 등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법적으로 단속 대상인 짝퉁은 상표법을 위반한 제품이다. 관세청, 경찰 등에서 상표법 위반자를 검거해 제품을 몰수하면 제조사에서 짝퉁 여부를 판별하게 된다. 상표법을 침해했을 때는 7년 이하의 징역,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상표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유통되는 제품도 짝퉁의 일종이다. 소비자는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시장으로 나온 제품을 진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표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법적으론 이런 제품도 문제가 된다. 명품 짝퉁은 등급을 매기기도 한다. 진품과 비슷한 정도에 따라 통상 특A급(미러급·SA급), A급, B급, C급으로 나뉜다. 짝퉁 판매 사이트 등은 대부분 특A급을 판다고 소개하지만 진짜 특A급은 시중에서 찾기 힘들다는 게 업자들의 말이다. 특A급이라는 말을 믿고 짝퉁을 구매했다면 ‘짝퉁의 짝퉁’에 속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홍콩산 SA급’이란 표현도 사실과는 다르다. 홍콩엔 짝퉁 제조 업체가 없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 만든 제품의 중간 기착지가 홍콩일 뿐이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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