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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전자결제-'스마트 카드'시장 동향 [1]

중앙일보

입력

여느 날과 다름없는 정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학생 아만다 곰리(21)는 점심을 먹기 위해 서둘러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음식값은 ID+ 카드로 결제한다. ID+ 카드란 학생증·직불카드를 겸한 이른바 ‘스마트 카드’. 부모가 학기 초 그녀의 계좌에 현금을 입금시켜 놓은 상태다.

그녀는 식사 후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복사한다. 복사기가 ID+ 카드에서 대금을 자동 인출한다. 그녀는 기숙사로 돌아와 출입구의 카드 판독기에 카드를 통과시킨 뒤 안으로 들어선다. 방에서 빨랫감을 모아 세탁실로 향한다. 세탁비 역시 세탁기의 카드 판독기를 통해 자동 인출된다.

최근까지만 해도 정보저장 칩이 내장된 스마트 카드에는 한 가지 기능만 갖춰져 있었다. 일례로 지하철 카드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만 쓸 수 있을 뿐 전화카드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그네틱선말고도 마이크로프로세서까지 내장된 차세대 통합카드는 기존 마그네틱선 카드의 100배가 넘는 정보저장 능력을 갖고 있다. 카드 하나에 온갖 기능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기록된 데이터 보호, 온라인 구매시 대금을 결제하고 제품 배달정보를 기록하는 ‘전자지갑’, 온라인 쇼핑 할인 쿠폰, 항공기 마일리지, 비행기표 예매 등 온갖 기능이 들어 있다. 스마트 카드를 PC와 연결된 작은 카드 판독기에 집어넣으면 불필요한 기존 응용프로그램을 없애고 새 프로그램을 추가할 수도 있다. 일례로 직원들이 출장가서 묵는 호텔을 다른 곳으로 변경할 때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

지난 18개월 동안 미국의 4대 신용카드업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퍼스트 USA, 플리트(Fleet), 프로비디언(Providian) 등이 통합카드를 선보였다. 업계 5위 마스터카드도 영국계 은행과 손잡고 올해 후반 칩이 내장된 스마트 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은행들이 스마트 카드 보급에 열 올리는 모습을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수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스마트 카드를 놓고 갑자기 부산떠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비자들은 스마트 카드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을까.

내막을 들여다보면 업계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퍼스트 USA의 마케팅 최고책임자 카터 워런은 은행이 신규 고객을 유치, 수익제고에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은행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최대과제가 “가격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택할 때 이율만 따진다. 스마트 카드는 그런 경향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신용카드업계 소식지 닐슨 리포트의 데이비드 로버트슨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이 기업고객 확보를 위해 저리융자에 나서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 그 결과 소비자 눈을 현혹시킬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하게 됐다. 칩카드가 바로 그것이다.”
신용카드업계가 스마트 카드로 시선을 돌린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금융서비스업계 전반이 다른 업계의 직접투자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증권사 E트레이드나 슈왑(Schwab)은 물론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社까지 시중은행과 신용카드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신용카드업’을 가로채면 어쩌겠는가. 신용카드사들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로버트슨의 말마따나 아마존닷컴에서 책이나 CD를 구입하는 데 칩카드 보안기능까지 동원한다면 그야말로 ‘과민반응’이다. 그러나 칩카드의 보안기능은 인터넷 뱅킹에 필수요소다. 고객이 여러 계좌에 수시로 자금을 이체하기 때문이다. 로버트슨은 스마트 카드 덕에 “금융업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소비자들과 기존 오프라인 소매업계에 칩카드 보안기능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신용카드사들은 제휴대상을 다른 곳에서 물색해 왔다. 인터넷 소매업계가 바로 그것이다. 비자카드 인터넷 사업 부문 e비자의 제임스 매카시 수석부사장은 “인터넷을 통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용카드 부정사용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온라인 소매업계는 손해방지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메리디언 리서치社에 따르면 올해 신용카드 부정사용으로 온라인 소매업계가 입게 될 피해 규모는 9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일례로 카드 부정 사용자가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 자기 카드인 양 가장하고 허위 주문을 낼 때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아마존이 떠안게 된다. 온라인 쇼핑객들이 스마트 카드를 이용하면 신용카드 부정사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온라인 소매업계는 물론 오프라인 소매업계도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신용카드업계의 계산이다. 갭닷컴 (Gap.com)이 스마트 카드를 수용하면 오프라인업체 갭(The Gap)도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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