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월드컵’ 대표선수 뽑으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6호 02면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가 모처럼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했다. 독일 축구팀이 유로 2012 4강전에서 23일 새벽 그리스를 4-2로 꺾은 경기를 관람하면서다. 메르켈의 환호는 유럽 금융위기로 잔뜩 골치 아픈 독일 국민을 다독이는 제스처일 수 있다. 바로 ‘유럽은 하나’라는 메시지다. 독일 곳간을 좀 비우더라도 유로존 17개국의 대오(隊伍)를 유지하는 게 독일의 장기 국익에 부합할 테니까. 집권 21년간 영국을 부흥시킨 마거릿 대처(86) 전 총리 이후 가장 뚝심 있는 철녀(鐵女) 메르켈다운 행보다.

이양수의 세상탐사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다는 유로 2012 게임을 지켜보며 문득 글로벌 리더십 경연대회를 상상해 본다. 각 나라 정상들이 참가하는 ‘리더십 월드컵’이다. 몸으로 뛰는 게 아니라 리더십 실력을 겨루는 가상게임이다. 나라 크기나 인구, 경제력 같은 ‘계급장’을 떼고 붙는다면 작은 나라의 정상들도 불리할 게 없다. 누군가 필자에게 ‘생존한 국가 리더 중 가장 뛰어난 이’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다섯 손가락을 이렇게 꼽겠다. 메르켈, 대처에다 리콴유(李光耀·88) 전 싱가포르 총리, 넬슨 만델라(93) 전 남아공 대통령, 룰라(66) 전 브라질 대통령. 이들은 나라의 힘과 위상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민주화란 시대과제를 온몸으로 돌파해냈다. 그런가 하면 유도요노(62) 인도네시아 대통령, 테인 세인(67) 미얀마 대통령 같은 새로운 기대주도 있다. 한반도 주변 4강인 미·일·중·러 정상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건 대국(大國)의 국력에 비해 어딘가 2% 모자라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판 때문이지 개인 리더십이 썩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어느 나라든 자랑스럽게 내세울 지도자가 있을 때 국력은 뻗어 간다. 정상(頂上) 자신이 국가 대표 브랜드이자 국가 경쟁력이다. 수많은 나라의 정상끼리도 같이 사진 찍고 싶은 이가 있는가 하면 말조차 섞고 싶지 않은 이가 있다고 한다. 잘나가는 외국 정상과 나란히 설 때 자기 이미지도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런 반열에 들어갈 것 같다. 김대중 정부의 한 외교관은 “오라는 정상도 많고 오겠다는 정상도 많아 일정 조정에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는데 사진 촬영 하자고 소매를 잡아 끌 외국 정상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대한민국호(號) 선장을 뽑을 12·19 대선이 178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역대 대선 같으면 이맘때쯤 여야가 대선 후보를 결정하고 본선을 시작해야 하는데 상대 쪽보다 먼저 뽑으면 큰 손해를 볼 것처럼 좌고우면(左顧右眄)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몇몇 후보는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콘텐트는 뒷전에 둔 채 ‘경선 룰’이니 ‘가설 정당’이니 샅바싸움만 벌인다. 그뿐이 아니다. 평화·복지·성장·통합·정의 같은 미사여구를 내놓지만 그걸 어떻게 해내겠다는 정책대안도 로드맵도 묵묵부답이다. 야당 쪽은 아예 런던 올림픽과 추석을 피해 흥행 대목을 잡으려 한다. 이러다 10월 초에나 대선 본선 구도가 짜일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만저만한 본말 전도가 아니다. 겨우 두 달 만에 국가 최고 리더를 고르라는 얘기여서다. 무엇을 그렇게 겁내는지 모르겠다. 혹 대선후보 검증의 혹독한 화살을 견뎌 낼 자신이 없어선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12월 대선은 학교 운동회의 청백전 승리자를 가리는 게임이 아니다. 인구 5000만 명과 10위권 경제대국을 이끌 막중한 짐을 지게 된다. 고령화, 양극화, 경제위기, 남북 통일이라는 수많은 난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주변 4강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국가대표선수가 될 만한 품성과 능력, 경륜,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대선을 앞두고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이번엔 반드시 지역감정, 대중 선동에 의존하려는 인사들을 선거판에서 추방하자. 최선의 선택이 어려울 땐 최악의 카드부터 하나씩 버리는 것도 지혜일 수 있다. 해외여행을 할 때 외국인에게 대통령 이름을 거명하면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거릴 인사에게 힘을 몰아주자. 그런데 그런 분이 누구냐고요. 그런 것들을 알 시간조차 주지 않는 ‘대선 경기장’이 갑갑할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