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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갈 때마다 고민해야 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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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35면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 이모(40)씨는 23일 아침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날 서울행정법원이 지역 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강제해 온 서울 강동·송파구의 조례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 결정으로 24일 쉴 예정이던 두 자치구 내의 대형마트 6곳과 기업형수퍼마켓(SSM) 42곳이 문을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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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인 이씨 입장에서는 우선 반가웠다. 4월부터 대형마트가 일요일마다 격주로 문을 닫아 쇼핑 불편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는 법원 결정을 보면서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대형마트의 격주 휴무만으로 전통시장이 되살아날 것인지도 불확실했지만 의무휴업은 무의미하다는 것인지, 전통시장 살리기는 포기한 것인지 도통 궁금했다.
이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은 두 자치구에만 있는 게 아니다. 현재 강동·송파구와 유사한 행정소송 또는 가처분 신청이 전국 9곳에 들어가 있다. 경기도 성남시·수원시, 인천 부평구, 전북 전주시, 경남 창원시, 충남 서산시 등이다. 각 지방의 법원 판결에 따라서는 지자체별로 영업을 하는 지역과 문을 닫는 곳이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새로 소송이 제기되는 지역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은 사실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다. 영업제한의 근거가 된 ‘유통산업발전법’의 취지는 정당하지만, 두 자치구가 영업제한처분을 내릴 때 대형마트 측dp 의견 제출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또 지자체장이 그 지역의 공익을 고려해 휴무 여부를 결정하라는 상위법의 취지와 달리, 무조건 의무휴업을 하도록 한 강동·송파구의 조례 통과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공청회나 의견수렴 과정을 다시 거치면 두 자치구 내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는 재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에는 판결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시민 권리를 제한하는 결정이, 지역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치적인 의도로 졸속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강동·송파구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들마다 활성화된 전통시장의 유무, 대형마트의 위치·수 등은 제각각 다르다. 같은 자치구라도 주부 이씨처럼 대형마트나 SSM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통시장 인근에 살며 대형마트와는 별 상관없는 이들도 많다. 또 소상인들에게 활로가 필요하다는 여론과 함께, 강제 휴무 조치로 납품업체나 대형마트 근무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대형마트 혹은 전통시장과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을 뺀 대부분의 시민은 이런 입장이 뒤섞인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사람들은 누구나 접근성과 편의성, 판매가격을 따지는 합리적인 소비자일 뿐 아니라, 조화롭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통업체와 각 지자체, 나아가 중앙정부는 대형마트 휴무 조치와 관련해 더 상세하고 솔직한 정보를 제시하고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시민들이 쇼핑할 때마다 ‘합리성’과 ‘상생’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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