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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중국 포위전략 참여를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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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김정은의 북한과 합작으로 남북관계를 냉전종식 후 최악으로 몬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는 한·중 관계를 크게 후퇴시키는 게 아닌가 심히 걱정된다. 한·미 외교·국방장관들이 6월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전략대화 끝에 발표한 성명은 중국을 시야에 둔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의 전폭적인 지지선언 같다.

 한·미 안보장관들은 지역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과 조정 강화가 중요하다고 확인했다. 중국이 경계하는 느슨한 한·미·일 안보동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안보장관들은 남중국해의 평화·안정·안전을 위한 중국-아세안 행동규약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섬들이 중국 영토라면서 행동규약 같은 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공동성명은 중국·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일본의 이해가 뒤엉킨 남중국해의 영토분쟁에 개입해 중국과 대립하는 나라들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미 안보장관들은 인도의 동방(Look East)전략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인도와 대화·협력·관여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자는 데 합의했다. 인도의 동방정책은 1990년대 초 나라심하 라오 총리가 경제개혁 정책의 한 갈래로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경제협력을 증진·강화할 목적으로 시작한 외교 이니셔티브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해 아시아의 정치·안보·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지금 인도의 동방전략은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방대한 인구와 땅덩어리에서 중국과 맞설 나라는 인도뿐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인도의 아시아 전략과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복귀 전략의 제휴는 중국의 핵심 이해를 위협하고 아시아에서 전략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한국은 인도를 중국 견제망에 참여시키려는 미국의 정략적 의도가 분명한 성명에 서명했다.

 한·미 안보장관들의 공동성명을 읽은 중국의 심사가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한·미·일 안보축으로 중국을 견제한다. 태평양의 남단에서는 호주에 해병대를 주둔시키고 중국과 경쟁하고 갈등하는 인도를 안보 파트너로 끌어안는다. 그 중간지대에서는 필리핀·싱가포르·베트남을 촘촘한 태평양 전략망에 편입시킨다.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이 6월 3일 베트남전쟁 때 미국의 중요한 해군기지였던 깜라인 만에 입항한 수송선에 올라 남중국해를 등지고 서서 미국의 본심을 드러내는 연설을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말했다. “미국 함정이 깜라인 만을 이용하는 것이 미국·베트남 관계의 핵심요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일본·호주가 미국의 핵심 동맹이라면 인도는 싱가포르·인도네시아와 함께 핵심 파트너로 입지를 굳혔다. 필리핀과 베트남은 핵심 동맹에 가까운 핵심 파트너라 하겠다.

 한·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2012년에 한국이 중국과의 외교·안보 갈등 모드로 외교노선을 수정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어리석다. 안보장관들의 공동성명이 아니라도 중국은 이명박 정부가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추진하는 일련의 국방태세 강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워싱턴 안보장관회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할 한·미 포괄적 연합방어체제를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 서해안 도서(島嶼)들에 대한 북한의 기습공격 대응을 주로 담당할 아파치헬기가 한국에 다시 배치되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KAMD)를 갖추고, 300㎞에 묶여 있는 한국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북한 전역을 사정거리에 넣는 길이로 연장하는 것이 거기에 포함된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개발 중인 미사일 방어망에 한국이 참여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에 대한 입장 때문에 현명하게 거절했다. 한국 정부는 가까운 데서 낮은 고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가 고공을 멀리 나는 미국형 미사일 방어망과는 다르다는 말로 중국의 의구심을 씻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수긍할 수도 있고 일축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핵·미사일 무장에 효과적으로 대비하자면 이런 방어체제 강화와 그 이상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방어태세 강화는 분명히 북한의 도발 대비에 한정돼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중국 견제전략에 주저 없이 참여해 우리의 정당한 방어태세 강화의 배경에 대한 의심을 사고 있다. 한반도가 냉전시대형 한·미·일 대 북한·중국·러시아 대결구도로 복귀하는 데 참여하거나 일조하는 것은 최악의 전략적 선택이다. 균형감각 없이 한·미 동맹에 올인하는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마지막 반년이 역사의 대세에 역류하는 반동의 반년이 안 되기를 바란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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