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형님 잡혔는데 어떻게…" 조폭들 줄줄이 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달 7일 부산지방검찰청 강력부 최재만 검사실로 부산지역 양대 폭력조직 중 하나인 ‘신20세기파’ 행동대원 최모(29)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수하면 선처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최 검사가 “고려해보겠다”고 하자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 최 검사는 깜짝 놀랐다. 최씨를 비롯해 전모(29)·변모(29)·정모(28)씨 등 4명이 자수하겠다며 제 발로 검사실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틀 뒤에는 위모(24)씨도 자수했다. 그는 고교 시절 야구 유망주로 2007년 프로야구 모 구단에 입단했으나 그해 퍽치기 범행으로 구속된 뒤 범죄조직에 가담하게 됐다.

 최 검사가 “자수를 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형님이 잡혔는데 우리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문제의 형님은 한 달 전 부산역에서 체포된 신20세기파 두목 홍모(39)씨다.

 20일 검찰에 따르면 신20세기파는 1980년대 부산시 중구 남포동 일대 유흥가를 기반으로 조직돼 3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왔다. 홍씨는 3대 두목이다. 영화 ‘친구’에서 행동대장급 조직원인 동수(장동건)가 가담한 조직으로 한때 유명세도 탔다.

 영화 속 얘기처럼 신20세기파는 부산의 또 다른 폭력조직인 ‘칠성파’와 피비린내 나는 영역 다툼을 벌여왔다. 2006년 1월 조직원 60명이 흉기를 들고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난입해 칠성파 조직원들과 난투극을 벌인 이른바 ‘영락공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20세기파를 부산의 두 번째 폭력조직으로 조서를 꾸미려고 하자 최씨가 ‘죄가 무거워져도 좋으니 우리를 첫 번째 폭력조직으로 해달라”고 해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조직폭력배들의 충성심은 겉보기에는 의리로 포장돼 있지만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충성하면 나중에 여러 가지 이권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날 두목 홍씨와 조직원 14명 등 모두 15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또 신20세기파 조직원이 120명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의 검거에 나섰다.

부산=위성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