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사장님 "영어쓰면 벌주…가슴으로 영업"

중앙일보

입력 2012.06.21 00:31

업데이트 2012.06.2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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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오비맥주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장인수 전 영업총괄 부사장. 고졸 출신으로 30년 넘게 술 영업을 해 온 그는 “앞으로도 현장을 계속 누빌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종 기자]

“영어할 줄 모른다”는 고졸 영업맨이 외국계 주류회사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일 오비맥주가 영업총괄 부사장에서 승진 발령한 장인수(57) 신임 사장이다.

 오비맥주는 “장 사장이 2010년부터 오비맥주의 국내 영업을 맡아 내수 시장에서 하이트를 제치고 오비맥주가 1위에 오르도록 만든 점을 높이 사 발탁 인사를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옛 진로와 하이트에서 30년을 보낸 장 사장은 2010년 1월 오비맥주 영업총괄로 자리를 옮긴 뒤 하이트를 눌렀다. 그가 오기 전인 2009년 오비맥주와 하이트의 출고량 비율은 오비맥주가 43.7%, 하이트가 56.3%였으나 올 1분기에는 오비맥주 53.8%, 하이트 46.2%로 역전됐다.

 전남 순천 태생인 장 사장은 서울 대경상고를 졸업한 후 신문용지를 제작하는 ‘삼풍제지’ 경리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역동적인 영업직을 꼭 해보고 싶다”며 1980년 진로에 입사해 주류 영업을 시작했다. 2007년 진로 서울권역을 총괄하는 상무이사로 승진했고 2008년 하이트주조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장 사장은 “고졸로 학사, 석·박사 동기들과 경쟁하기 위해 ‘남보다 조금 더’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동료들보다 한 발 더 뛰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다.

 오비맥주로 옮길 당시 장 사장은 최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 관계자들 앞에서 “영어는 할 줄도 모르고, 영어로는 일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부하 영업 직원들에게도 영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 오비맥주 직원들은 ‘유흥업소’를 ‘BNO(Big Night Out)’, ‘가정 소비자’를 ‘OTM(Off Trade Market)’으로 부르는 식으로 영어 약자를 쓰며 일했다. 장 사장은 오비맥주에 온 뒤 “거래하는 도소매상, 업주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쓰지 말라”고 이를 금지시켰다. 거래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영어를 쓰면 벌주를 주겠다”고도 공언했다. 영업하는 자세로 일상생활을 하라는 의미였다. 또 “오비맥주는 그동안 신사적으로 영업해왔다”며 “도매상만 상대하고 업소·소매점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영업총괄 부사장인 그 스스로 강남역·홍대·신천역과 같은 주요 상권을 직접 돌았다. 매달 첫째 날에는 도매상 대표 1400여 명에게 “거래해줘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또 답신을 하는 이들을 통해 현장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유통 방식 역시 뜯어고쳤다. 월말이면 도매상에 재고를 떠넘기는 ‘밀어내기’를 없앴다. 밀어내기는 월간 실적을 내기 위한 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매상에 맥주가 쌓이는 바람에 소비자는 출고된 지 한참 된 맥주를 먹어야 했다. 장 사장은 “맥주는 신선식품인데 묵은 제품을 소비자들이 마시게 할 수 없다”며 밀어내기를 금지했다. 이로 인해 오비맥주에 온 직후엔 실적이 좋지 않았다. 2010년 1월 출고량 기준 점유율은 한 달 전보다 5%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2010년 하반기부터 오비맥주는 상승세를 탔고, 결국 1위가 됐다.

 오비맥주의 한 임원은 장 사장에 대해 “32년간 영업을 뛰어서 그런지 상대방이 누구든 잘 맞춰주는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술 실력은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장 사장은 “영업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며 “수치상의 점유율 경쟁에 연연해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고객 감동을 이끌어내 1위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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