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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IT가 소통 방해꾼 돼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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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홍선
안랩 대표이사

어느 모임에서 회의 문화에 대한 얘기가 오간 적이 있다. 어떤 최고경영자(CEO)는 회의에 들어가서 화가 났다고 한다. 노트북PC를 가져온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그래서 “여기가 기자 간담회장입니까. 컴퓨터 모두 치우세요”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 자리에서는 컴퓨터를 꺼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CEO는 다름 아닌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어느 분야보다 컴퓨터와 밀접하게 일하는 그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으니 컴퓨터가 모든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막연한 가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회의 도중에도 무심코 관련 없는 주제로 빠져나가고자 하는 유혹이 들 수 있다. 그러면 회의의 집중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마침 그 다음 주에는 미국 출장을 가게 되었다. 몇 번 회의를 했지만 대부분 컴퓨터나 자료 없이, 심지어는 노트도 꺼내지 않고 회의가 이루어졌다. 필요하면 칠판에 적어 가면서 협의를 하면 충분했다. 사실 미국에서 이런 회의는 일상화되어 있다. 식사를 하다가 냅킨에 낙서를 하면서 수백만 달러짜리 아이디어가 잉태된다는 실리콘밸리의 스토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이디어의 실질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소통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IT의 발달과 글로벌화로 소통 환경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정보력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확보하느냐도 IT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최근 미국에서는 사람을 소개받을 때 이름만 알려준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거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대부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도 이름만 알려주면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바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도구 덕택에 소통의 시·공간적 장벽이 허물어지고 더욱 수월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구는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예로 든 회의 장면처럼 소통을 저해하는 상황이 되면 도구는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장식품일 뿐이다.

 소통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通)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일방적인 의사 전달이 아닌 것이다. 일방적인 그것은 ‘명령’ 혹은 ‘지시’라 부른다. 물론 조직의 통제와 팀워크를 위해 일방적인 방법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활발한 소통이 필요한 회의에서조차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문제다. 그런 경우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회의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결론을 낼 생각이 없거나 아예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수평적이고 쌍방향으로 대화가 오가는가, 화려한 자료를 만들고 받아 적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가를 냉정하게 평가해 봐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발전적인 결론이 나올 리 없다.

 오래 전 중소 벤처기업의 애로 사항을 의논하는 자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유명 정치인도 참석했다. 그런데 그는 20분 정도 늦게 나타나서 원론적인 얘기만 일방적으로 하더니 지방 출장을 가야 한다며 금세 자리를 떴다. 회의는 실질적인 문제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소통의 기본은 듣기다. 『경청으로 시작하라』(박노환 저)라는 책에는 ‘인간은 깨어 있는 시간의 70%를 의사소통에 사용하고 있다. 그중 48%가 듣기이며 35%가 말하기다. 듣기는 실로 의사소통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보태는 과정에서 처음 모였을 때는 기대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은 조직의 리더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기에는 외부 환경이 너무 복잡하다. 조직이 클수록 위험 부담도 커진다. 따라서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이 절실하다. 요컨대 조직의 리더는 실질적인 소통을 기반으로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통은 현장의 상황을 직시하고 문제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가능하다. 조직에서 자기 방어는 본능적이라서 소통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되곤 한다. 왜곡된 정보는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 경직되고 관료화한 조직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하다. 모든 문제점과 가능성을 가감 없이 논의해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기업의 중요한 비결 중 하나는 투명하고 실질적인 소통이다.

김홍선 안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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