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長城 장성

중앙일보

입력 2012.06.18 00:04

업데이트 2012.06.18 09:23

장성(長城) 토굴 물을 말에게 먹이는데/ 물이 차가워 말의 골수가 상하겠네. (중략) 장성은 어찌 그렇게도 길게 이어져/ 이어지고 이어지길 삼천리./ 변방 성에는 젊은이들이 많고/ 집 안에는 과부들만 많구나./ 편지 써서 집에 보내 말하길/ “다른 데 시집가오, 기다리지 말고./ 새 시부모 잘 받들고/ 때때로 옛 낭군 생각해주오”라 하니./ 답장을 변방에 보내 말하길/ “당신 지금 무슨 말을 그리 야속하게 하시오./ 몸은 재난을 만났으나/ 어찌 다른 집 부인 되리오./ 아들 낳으면 신중히 생각해 거두어 살리지 않고/ 딸 낳으면 고기 포를 먹여 기르겠소./ 그대 홀로 장성 아래를 보지 못했는가/ 죽은 자의 해골이 서로 지탱하고 있는 것을/ 머리 올려 그대를 섬기어 왔거늘/ 내 마음 답답하고 못마땅하오./ 변방의 당신 괴로움 분명히 알고 있는데/ 비천한 저만이 어찌 오래 편안히 살 수 있으리까.”

후한(後漢)의 시인 진림(陳琳)이 지은 ‘장성의 굴로 가다가 말에게 물을 먹이다(飮馬長城窟行)’란 시다. 진시황(秦始皇)의 만리장성이 백성의 해골로 지었음을 생이별한 부부의 편지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엷다. 멀리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네/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 여정을 손꼽아 보니 2만리/ 육반산 봉우리에 오르니, 붉은 기가 서풍에 휘날리네/ 오늘 긴 끈이 손에 있으니, 언제쯤 흉악한 창룡(蒼龍)을 잡을 수 있을까.”

인민을 위한 나라를 세우겠다며 2만리 장정(長征)에 나선 마오쩌둥(毛澤東)이 1935년 장성에 올라 지은 ‘청평락·육반산(淸平樂·六盤山)’이란 시다. 마오쩌둥의 장성은 진림이 본 장성과 180도 달랐다.

중국 국가문물국이 최근 베이징 거용관(居庸關) 장성에서 ‘긴 장성, 중화의 혼(長城長 中華魂)’이란 행사를 열고 역대 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18㎞라고 발표했다. 고구려·발해와 서역의 성곽까지 마구잡이로 합친 수치다. 전제 왕조의 폭정에 분노하기보다 사내 대장부의 기상을 뽐냈던 마오쩌둥의 중국은 고구려·발해가 해골의 장성을 수축하는 데 동참하지 않았음을 모르는 모양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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