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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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한국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너무도 평범한 남녀의 이야기를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일상적 화면에 담아내, 영화와 닮은 삶을 사는 이들로부터 적잖은 관심을 샀다.

'아름다운' 영화처럼 살고 싶은 게 우리네 삶이지만, 어떤 영화들은 너무도 '구질구질한' 우리의 삶을 닮는다. 영화 속에서 나의 일상을 만나는 일은 때론 매우 즐겁고, 때론 매우 낯설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감독 : 홍상수 / 주연 : 김의성, 이응경, 조은숙 / 출시 : 1996년 8월 9일

홍상수 감독은 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단번에 작가 대열에 올랐다. 어디서 본 듯한 무료한 영상은 우리들의 일상이 문득 얼마나 낯설어질 수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제16회 영화평론가상 신인감독상,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언론으로부터 대대적인 극찬을 받았다. 4명의 주인공들이 하루동안 겪는 4가지 에피소드가 낯선 방식으로 얽힌다.

삼류소설가로 취급받는 30대 남자 효섭은 보경이라는 이름의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의 아내를 꿈꾸는 민재라는 여자와도 내연의 관계에 있다. 소심한데다가 약간의 결벽증까지 가지고 있는 보경의 남편 동우는 평범한 샐러리맨. 출장지에서 늘 아내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있다.

애정만세 愛情萬歲 ★★★★

감독 : 차이 밍량 / 주연 : 양귀매, 진소영, 이강생 / 출시 : 1995년 8월

다분히 역설적인 제목의 이 작품은 한 도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매우 우연적으로 일어나지만, 결코 억지스럽거나 과장되어 있지 않다. 차이 밍량 감독은 이 작품으로 1994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대만 뉴웨이브 2세대의 주자로 주목받았다.

부동산 중개인으로 살아가는 독신녀 메이, 야시장 노점에서 싸구려 옷을 파는 아정, 납골당 직원 시아오강은 모두 타이페이에 살고 있다. 이들은 매일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메이와 아정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이끌려 정사를 나누고, 시아오강은 그들이 정사를 나누는 아파트에서 몰래 외로움을 달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And Life Goes On... ★★★★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주연 : 파르헤르 케라만드, 푸야 파이바르 / 출시 : 1998년 9월 14일

일상을 통해 동화를 만드는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절망이 어떻게 희망을 낳는가를 아름답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늘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이 작품 역시 의미 깊은 마지막 장면으로 여운을 남긴다.

1990년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촬영했던 코케 마을이 지진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코케 마을로 향한다. 그러나 코케 마을로 가는 도로는 자동차 행렬로 꽉 막혀있다. 샛길로 돌아가며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포스터를 보여주며 아이들의 안부를 묻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숏컷 Short Cuts ★★★★

감독 : 로버트 알트만 / 주연 : 팀 로빈스, 매들린 스토우, 앤디 맥도웰 / 출시 : 1995년 11월 1일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일상의 단면을 통해 세기말의 중산층 미국인들이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보여주는 알트만 영화다. 헐리우드적 환상을 비트는 데 독특한 재능을 가졌던 알트만 감독이 유명 스타들을 자유자재로 제어한 연출력이 놀랍다. 제50회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피에로 분장을 하고 쇼를 보여주는 클레어 부부와 화가 메리안 부부, 모든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바람둥이 경찰관 부부, 낚시터에서 여자의 변사체를 발견하지만 그대로 방치해 둔 스튜어트와 친구들 등등 다양한 중산층 도시인들의 삶이 얽히고 설킨다.

블루 인 더 페이스 Blue in the Face ★★★☆

감독 : 웨인 왕 / 주연 : 하비 케이틀, 마이클 J. 폭스, 짐 자무쉬 / 출시 : 2000년 3월 3일

웨인 왕 감독이 '스모크' 속편 격으로 만든 작품이다. 분위기는 '스모크'보다 더 일상적이지만, 짐 자무쉬, 마돈나 등 특별히 비일상적인 배우들이 출연해 반갑다. 오기 렌의 편안한 담배가게를 배경으로 인간 군상의 가깝고도 먼 일상이 펼쳐진다.

브룩클린 3번가 모퉁이에 위치한 오기 렌의 담배 가게. 오늘도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가게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한 젊은이의 사생활에 참견하던 웨이트레스와 청년이 말싸움을 벌이고, 곧 이어 사장의 뚱뚱한 아내가 와서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영화제작자 밥이 찾아와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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