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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이건희·박원순도 사찰 … 검찰, 석 달 재수사 ‘맹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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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8년부터 2년여간 불법사찰을 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용훈 전 대법원장, 김성호 전 국정원장 등 노무현 정부 고위 인사들에 대해서도 동향 파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그러나 청와대 최고위층과 민정수석실 관계자 등의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관여 증거는 찾아내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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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의혹 사건을 재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3일 이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3개월간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박영준(52·구속기소) 전 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영호(48·구속기소)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08~2010년 지인과 기업체들의 청탁을 받아 울산시청 관계자들과 칠곡 군수, 부산상수도사업본부를 불법사찰했다는 혐의를 새로 확인했다. 검찰은 두 사람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또 최종석(42·구속기소) 전 청와대 행정관이 2010년 7월 7일 검찰 압수수색 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확인했다. 이와 함께 1차 수사 때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관여가 드러났던 이인규(56·불구속기소)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진경락(45·구속기소)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2008년 10월~2009년 6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5160만원을 이영호 전 비서관에게 상납한 혐의도 밝혀냈다.

 검찰 수사 결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 또는 동향 보고한 건 모두 500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이 전 대법원장, 김 전 국정원장 외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경실련 공동대표인 보선 스님, 방송인 김미화씨 등 유명 인사 30명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적법한 조사 활동이거나 단순 동향 보고 수준이라 관련자들을 사법 처리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 중 이영호 전 비서관은 260여 건, 박영준 전 차장은 40여 건을 보고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비서관이 장진수(39) 전 총리실 주무관과 진 전 과장 등에게 1억3000만원을 줬고, 이상휘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관련자들에게 3500여만원을 줬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입막음용’ 등 대가성 자금인지는 입증하지 못했다. 검찰은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준 관봉(官封) 5000만원의 출처를 밝혀내는 데도 실패했다.

 검찰은 특히 3개월 동안 검사 14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도 청와대 상층부의 불법사찰이나 증거인멸 관여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해 ‘몸통’ 규명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은 앞서 진 전 과장이 작성한 이른바 ‘VIP충성문건’과 진 전 과장의 구치소 접견기록 등에서 청와대 최고위층과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이 관여했다는 정황을 확보했었다. 부실 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검찰은 정정길·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 12명을 소환조사 않고 서면조사로 끝냈고 증거인멸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12일 서면진술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마무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검찰은 사즉생(死卽生·죽을 각오로 하면 산다)의 각오를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청와대와 내부자들의 구명도생(苟命圖生·근근이 목숨을 부지해 이어감)에만 주력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인 2000~2007년에도 당시 총리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총 37명)이 여야 의원 등 정치인 17명과 민간인 5명 등 22명에 대해 동향 파악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원엽·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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