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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예방, 팔 걷고 나선 지자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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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송파구청 대강당.

 송파구가 마련한 ‘왕따, 학교폭력이 없는 세상’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200여 명의 학부모로 강당은 가득 찼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들이 강사로 나서 청소년 심리와 학교폭력 예방법을 세세히 설명하는 자리였다. 주부 강현정(48)씨는 “학교폭력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제대로 알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송파구가 지난 5월 제정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이다. 조례에는 학부모에게도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토록 돼 있다. 송파구 학교협력과의 이정희 계장은 “7월에는 학교폭력예방센터를 열어 다양한 학교폭력 예방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대구 중학생의 자살사건 이후 지자체별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조례 제정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까지 조례 제정 지자체가 6곳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5곳이나 새로 조례를 만들었다.

 이들 조례는 기존 교육감만 가지고 있던 학교폭력 예방 의무를 지자체장에게도 부여하고 경찰과 교사·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학교폭력예방대책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에는 눈에 띄는 방안을 담은 조례도 있다. 지난 5월 조례를 제정한 인천시는 학교폭력 문제의 병폐 중 하나였던 사고 은폐를 막기 위해 ‘사고 발생 건수에 따른 학교 평가 금지’와 ‘학교폭력 발생에 따른 학교·교원 평가 불이익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최근 조례를 만든 전북 군산시는 노인들을 학교 주변 순찰대원으로 활용토록 해 ‘학교폭력예방’과 ‘노인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조례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우선 해당 지자체별 여건 등을 무시한 채 너무 서둘러 조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조례를 시행 중인 21개 지자체 중 무려 15곳이 올 3월 이후 조례를 제정했다. 내용도 기존 교육청들이 추진해 왔던 학교폭력예방 대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자체들이 조례에서 공동으로 내세우고 있는 학교폭력예방대책위원회의 경우 경찰·교사·민간단체 등 여러 기관이 모이기 때문에 의견 조율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교육계나 경찰 등이 각기 다른 학교폭력 대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입장 차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자칫 탁상공론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배상훈(교육학과) 성균관대 교수는 “학교폭력 예방활동에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인지도를 높이거나 정치적 입장을 위해 만들어진 조례라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또 “학교폭력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 만큼 지역 특성에 맞는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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