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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중국, 성장과 다시 키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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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국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 돌고 있는 사진 한 장. 한 중년 남자가 서류에 키스를 하고 있다. ‘시장, 비준 문서에 키스하다(市長親吻批文)’라는 제목이 달린 이 사진의 주인공은 왕중빙(王中丙) 광둥(廣東)성 잔장(湛江)시 시장. 그는 5월 27일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부터 잔장시 철강단지 건설사업을 승인받은 뒤 그 감격을 이기지 못해 서류에 키스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잔장시의 숙원이었던 700억 위안(약 12조6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대한 중앙정부의 비준이 떨어진 것이다. 유명 경제학자인 후스즈(胡釋之)는 이 사진을 두고 “중국이 또다시 성장과 키스하고 있다(吻增長)”고 말했다(중국어 ‘穩’과 ‘吻’의 발음이 같은 ‘원’이기에 나온 비유다). 중국이 지난 2년여 동안 지속된 구조조정 시기를 끝내고 성장 기조로 선회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진이라는 얘기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지난달 19일 “이제 온건한 성장(穩增長)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한 뒤 중국 정부가 각종 경기부양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가전제품에 대한 보조금을 다시 지급하기로 했고, 재할인율·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또 경기긴축을 이유로 그동안 중단했던 개발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하기 시작했다. 잔장시 철강단지도 그중 하나다.

 언론에서는 ‘바오바(保八)’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다. ‘8%의 성장률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중국이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을 다하던 2009년에 유행하던 신문 용어였다. 그런가 하면 ‘국내총생산(GDP)을 구하라(拯救 GDP)’는 말도 자주 눈에 띈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8.1%.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한 충격으로 2분기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면서 중국의 ‘GDP 구하기’ 작전은 속도를 더하는 양상이다.

 유럽 재정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세계 경제에는 한 줄기 빛이다. 2008년 터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때 그랬듯, 중국이 또다시 세계 경제를 구할 백기사로 등장할 거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그해 말 중국은 3개월여 동안 금리를 무려 5번이나 내렸고, GDP의 약 17%에 달하는 4조 위안(약 700조원) 규모의 화끈한 부양책으로 글로벌 경기회복을 주도했다. 세계가 3년반 만에 다시 시작된 중국의 ‘GDP 구하기’ 작전을 반기는 이유다.

왕중빙 잔장시 시장이 지난달 27일 중국 국가발전 개혁위원회로부터 철강단지 건설 사업을 승인받은 뒤 감격에 겨워 승인 서류에 키스하고 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5월 이 밖에도 대형 철강 프로젝트 2건을 승인했다. [사진 중국 바이두]

 

분위기는 좋다. 물가가 3%로 내려앉으면서 은행 창구를 열 여지가 넓어졌고,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도 2% 미만이어서 정부 곳간의 실탄도 풍부하다. 그러나 중국은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번 경기부양은 2008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규모가 작고 방법도 미세조정(微調·fine tunning)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가전제품 지원제도가 그렇다. 지난 1일 시행에 들어간 가전제품 보조금 대상은 절전형 제품에 한정됐다. 에너지 소모가 적은 제품을 살 경우에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기부양과 에너지 절감형 제품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뜻이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2008년 가전하향(家電下鄕·농민들의 가전제품 구매 지원) 지원 규모가 3년간 약 700억 위안에 달했던 데 비해 이번에는 1년 동안 265억 위안을 보조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규모 면에서 파급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부양의 핵심은 부동산 시장이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부동산 분야는 부양의 대상이 아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장빈(張斌) 중국사회과학원 세수연구실 주임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서서히 빼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뜻”이라며 “부동산 분야의 대대적인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삼두마차는 투자·수출·소비다. 수출은 지난 5월 반짝 상승(15.3%) 추세를 보였지만 미국·유럽 등 서구 시장 위축으로 마이너스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수출 부진은 전체 고용의 약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민영기업에 충격이다. 소비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출·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그래도 믿을 것이라고는 투자뿐이다.

 주요 투자사업에 대한 승인권을 갖고 있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그간 묶어 뒀던 프로젝트에 대해 무더기로 ‘OK’ 사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5월 한 달에만 철강·풍력·수력발전 등의 분야에서만 1800억 위안(약 32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신장(新疆)성 스허쯔(石河子) 공항 등 6개 공항 건설 프로젝트가 승인됐고, 중단됐던 고속도로·철도 건설사업도 속속 재개되고 있다. 왕멍수(王夢恕) 중국공정원 원사는 “2010년 경기 조절 정책으로 중단됐던 철도 건설 프로젝트 중 80%가 지난 4~5월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바이오·신에너지 등 7대 성장산업에 대한 국고 지원책도 곧 발표된다.

 핵심은 역시 ‘바오바’의 성공 여부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열쇠라고 말한다. 중국 GDP 성장에서 고정자산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0%, 그 고정자산투자 중 20%를 부동산 분야가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경제 파급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교통은행 수석경제분석가인 훙하오(洪灝)는 “2010년 이후 부동산 분야 투자 증가율은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며 “부동산 상황이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어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8% 성장은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게 될 당(黨)대회를 4개월여 남겨 놓은 중국 지도부에 ‘8%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가발전개혁위가 최근 성(省)·시(市)정부의 고위 경제담당자를 소집해 8% 성장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남방주말(南方周末) 보도는 이런 분위기를 잘 전해 준다. ‘경기부양 효과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면 부동산 시장을 띄워서라도 결국 8% 성장을 맞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 가는 이유다. 하반기 추가 금리 인하 역시 ‘GDP 구하기’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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