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정책에 관해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옳은 정책이 아니다”며 쓴소리를 했다. 라구람 라잔(49)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에 가장 영향력이 큰 경제학자 1위로 꼽은 인물이다.
1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난 라잔 교수는 “인도도 완구사업을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보호정책을 펼쳤지만 더 싼 중국산 완구가 밀려들어와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면 당장은 잘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경쟁력이 떨어져 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라잔 교수는 “중소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날 KOTRA가 설립 50주년 기념으로 개최하는 국제콘퍼런스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다.
-한국에서 소득격차를 말할 때 대기업에 대한 논란이 빠지지 않는다.
“삼성·현대차와 같이 일부 대기업이 큰 성공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단점이 있더라도 그간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대기업에만 주던 특혜를 없애면서 중소기업에도 더 나은 기회를 줘야 하지만 새 규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또 대기업이 왜 성공했는지 연구해 그 답을 중소기업에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정해 대기업이 철수하게 했다.
“인도 정부도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펼쳤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보호하면) 중소기업이 오늘은 잘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경쟁력이 떨어져 업계에서 입지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개방형 경제체제에서는 경쟁력 있는 외국계 기업이 몰려들 수 있다.”
- 저서 『폴트 라인』에서 2008년 경제위기가 소득격차 탓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가계 부채가 증가한 이유는 정부가 저소득층에 신용한도를 확대한 데 있다. 기술 발달로 직업이 사라지고 저소득층이 위기에 놓이자 정치인들이 쉬운 방법으로 이들의 신용한도를 늘렸다. 주택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당시 혜택 받은 사람들이 더 위기에 처하게 됐다.”
- 유럽 재정위기도 소득격차 탓인가.
“비슷한 문제가 있다. 유럽 정부가 저조한 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채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켰다. 국가별로 채무자만 조금씩 다르다. 그리스는 정부이고, 스페인은 지방자치단체·건설업계, 아일랜드는 은행과 건설업계다.”
- 이번 위기가 한국 에 미칠 영향은.
“한국은 대부분의 성장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서구에서 부채를 기반으로 한 지출을 더 이상 못할 때 한국 경제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신흥시장끼리의 교역을 늘리거나 자체 내수시장을 키워야 한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 등 6개 정도의 주요 산업에 집중돼 있는 것을 다변화해야 한다.”
-올해 유럽 위기에 미국 재정문제까지 겹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데.
“유럽에 심각한 위기가 올 가능성은 50% 미만이라고 믿고 있다. 유럽 정치인들은 위기를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할 여력이 있다. 미국도 정부가 나서서 추가적인 경제 침체가 오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다.”
라구람 라잔 인도 출생. 미국 MIT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2003~2007년 국제통화기금(IMF) 최연소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2010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을 사회 불평등에서 찾은 『폴트 라인(Fault line)』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