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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마지막 날 스피노자가 심겠다던 사과나무 한 그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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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여동생에게 요 몇 주는 힘든 나날이었다. 20년 지기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 나의 전 직장 후배이기도 한 그녀는 두 아이를 남겼다. 암이었다. 매일 병원을 찾는 동생에게 그녀는 “여기를 나가고 싶다. 어디든 고요한 곳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고 했단다. 하지만 바람에 그쳤다. 다른 많은 암환자들처럼, 수액과 체액이 고인 온갖 관을 주렁주렁 매단 채 짧은 생을 마쳤다. 동생은 “언니도 너무 애쓰며 살지 마라”고 했다. “남의 시선 따위 다 부질없다. 절대 아프지 마라”고도 당부했다. 내가 할 말이었다. 한데 너든 나든 누가 됐든, 도대체 매사 애쓰지 않고 살아지는 세상이냐 말이다.

 사춘기 적, 죽음의 공포에 깊이 함몰된 때가 있었다. 종교적 영향이 컸다. 잘못 살면 어쩌지? 그 죄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된다면? 이후 무신론을 택하면서 공포는 희석됐다. 그렇다고 삶이 쉬워진 건 아니었다. 한 번뿐인 인생, 어떻든 후회 없이 살고 싶다. 그래서 다들 버둥대지 않는가. 후회 없이 죽기 위해서.

 동생과 통화한 뒤 스크랩해 뒀던 올 2월 영국 가디언지 기사 하나를 다시 읽었다. 호주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쓴 책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소개한 글이다. 웨어에 따르면 대부분의 남성은 ‘너무 열심히 일한 것’을 후회했다. 그로 인해 아이의 성장과정, 배우자와의 동지애를 잃고 말았다. 남녀를 떠나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한 건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이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 못한 것’ ‘옛 친구들과의 우정을 잃은 것’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을 위해 더 노력하지 못한 것’도 늦은 후회의 대상이 됐다. 그러니까, 이제 스피노자를 말할 때다.

 흔히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로 그를 기억한다. 정말 그가 한 말인지도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그건 내게 하나의 ‘장면’이다.

 ‘하늘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다. 마른 벌판, 등 굽은 남자가 작은 사과묘목 하나를 눌러 심는다. 돌아서 집으로 향한다. 등 뒤에서 태양이 터진다. 마지막 섬광. 그가 이제껏 심은 수천 그루 나무들이 재가 되어 흩어진다….’

 유대인인 스피노자는 철학적 신념 때문에 동족으로부터 파문 당했다. 평생 렌즈를 깎아 연명했지만 담담했다. 매일 또박또박 ‘현재’를 살았다. 오늘 나무를 심었으니 내일 단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아니다. 나무를 심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내일 태양이 터진다 해도 그것으로 ‘오늘’은 완성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 말라’는 경구로 통한다. 길을 알면서도 못 가는 건 멍청해서가 아니라 너무 똑똑해서일 게다. 오늘밖에 모르는 바보. 그렇게 한 번 살아보자고, 부질없는 다짐을 또 해본다.

글= 이나리 논설위원
사진= 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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