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졸 직원이 기능장 따면 ‘사장의 식사 접대’ 받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기능마스터에 도전하는 한주민(39·가운데)씨와 구자양(52·오른쪽) 기장이 선배 기능마스터 허오정(43) 대리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삼성토탈]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 위치한 삼성토탈 석유화학공장에 근무하는 한주민(39)씨. 고졸 출신에 이렇다 할 특기도 없던 그에게 큰 목표가 하나 생겼다. 출퇴근 길에 지나치는 회사 안의 도로 주변 팽나무 한 그루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동판을 거는 일이다. 이 회사에서는 이를 ‘기능마스터 대열에 합류했다’고 한다. 기능마스터는 삼성토탈이 자체적으로 석유화학산업과 관련된 가스, 위험물 관리 등의 기능장 자격증을 3개 이상 보유하거나 기능장 자격증 2개, 기사 자격증 2개를 보유한 현장 직원을 대상으로 불러주는 명칭이다. 일종의 ‘명인’ 인증인 셈이다. 이런 기능마스터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한 개의 기능장 자격증을 따려고 해도 해당 분야에서 11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거나, 기능사 자격을 딴 지 8년 이상 지나야만 한다.

 삼성토탈 대산공장은 전 직원 1000명 중 약 40%인 397명이 한씨와 같은 고졸이다. 석유화학공장 특성상 기계를 운전해야 할 기능직이 많이 필요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보유한 기능장·기사 자격증이 1435개에 이른다. 1인당 평균 3.6개다. 이 회사 손석원(59) 사장은 “이 정도면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많게는 15개까지 딴 직원도 있다.

 회사가 당근을 제시하면서 고졸 사원들의 전문화를 이끌었다. 기능장을 따면 한 달에 몇십만원 수당을 더 주고, 승격심사 시 가산점을 줬다. 사장의 ‘식사 접대’도 한다. 이에 더해 2009년부터는 기능마스터 제도라는 걸 만들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과 팽나무가 주어지고 있다.

 삼성토탈은 기능직들을 단순한 일부 공정의 부속물이 아닌 생산전문가(Product Engineer)화한다는 목표로 전문기능인 양성제도와 기능마스터제를 도입했다. 기능마스터 제도가 도입된 2009년 당시 공장장이었던 손 사장은 “공정과 설비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안전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려 회사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서산 공장은 기능직 직원들의 업무 이해도 향상으로 인해 사례로는 연간 12만 건, 액수로는 1000억여원 원가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손 사장은 “단순 작업자가 아닌 회사에 꼭 필요한 직원이 됐다는 자부심이 있을 뿐더러 가정의 화목까지 챙겼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전했다. 2009년 기능장 시험을 준비해 1년 만에 자격증을 획득한 한씨는 “아내는 물론 아이들(9, 10살)이 같이 책을 들여다보고 합격을 기원하며 108배까지 해 줬다”고 자랑했다.

 150명 정도 되는 전문대 출신들 역시 자격증 경쟁을 벌이고 있다. 허오정(43) 대리는 새벽 1시까지 필기시험 공부를 해가며 3년 만에 기능마스터가 됐다. 그는 “ 아이들도 내가 공부하는 걸 보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더라”고 말했다. 허 대리의 아들인 윤성(12)군 역시 “아빠처럼 기능장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이 회사 전체의 학구열은 점점 달궈지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치러진 제51회 기능장 필기시험에서 응시자 25명 중 19명이 합격했다. 특히 1999년 매각 형태로 분사했다 올 3월 재인수를 통해 삼성토탈로 재입사한 동력팀(옛 서해파워)에서는 가장 많은 5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이 팀의 최수일(46) 대리는 “전 직장에서도 기능장에 도전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재입사 후 사내 커뮤니티나 이미 기능장을 취득한 동료들의 도움에 힘입어 시험 준비를 해왔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능력 차별은 있을지언정 학력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며 “직원들의 능력 개발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