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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에도 수출 부진 … 조선·자동차·휴대전화 악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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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에서 10일(현지시간) 열린 유로존의 구제금융 반대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가짜 유로화를 발에 묶고 다니며 구제금융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말라가 로이터=뉴시스]

연초 정부는 올해 수출 증가율을 6.7%로 내다봤다. 2010년 이후 이어 온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었다. 눈높이를 낮춘 건 아무래도 유럽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미 지난해 4분기 이후 수출 증가율은 눈에 띄게 꺾이고 있었다.

 실제 성적표 역시 좋지 않았다. 올 들어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수출 증가율은 0.6%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무역수지 흑자도 당초 상반기에 130억 달러가량을 예상했지만 5월까지 60억 달러에 그쳤다.

 문제는 앞으로도 수출 회복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라는 점이다. 11일 산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가 연중 낮은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돼 하반기에도 수출 환경은 좋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의 강두용 동향분석실장은 “앞으로 유럽 사태가 수습 국면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수출 전망치를 상당폭 끌어내리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9일(현지시간)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정부와 금융시장은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은 11일 자금시장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이후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와 유로화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금융에서 실물로 옮겨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럽 재정 위기는 이미 한국의 실물경제를 흔들고 있다. 핵심 고리는 ‘수출’, 그리고 ‘중국’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수출에서 유럽연합(EU)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9.4%. 이곳만 문제라면 그런 대로 견딜 수는 있다. 하지만 EU는 중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 수출의 23%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유럽발 태풍이 중국에 다다르면서 한국에 미치는 파괴력은 배가되는 구조다.

 실제 EU에서의 주문이 줄면서 중국의 1~3월 수출 증가율은 7.6%에 그쳤다. 지난해 증가율 20.3%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급랭이다. 중국의 수출 공장이 덜 돌아가면 그곳에 부품을 대는 한국의 공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1~4월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이 마이너스(-0.3%)로 떨어진 건 이 때문이다.

 수출이 그나마 지난해보다 줄지 않은 건 미국이 받쳐 준 덕분이다. 하지만 유럽발 폭풍우는 중국은 물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도 파급되고 있는 양상이다. 1~4월 18.6%에 달했던 한국의 대미 수출 증가율은 5월 2%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여전히 한국 수출의 가장 큰 변수는 유럽 재정 위기의 향방이란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될 경우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의 성장률은 3.5%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EU의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대 EU 수출은 4%, 총 수출은 1% 줄어든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추산이다. 강두용 실장은 “유로권 위기의 심화는 세계 경제 전반의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파급력이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경우 업종별로는 EU와 중국을 통한 선진국 수출의 비중이 큰 조선·자동차·휴대전화·디스플레이·반도체 부문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의 고민 역시 금융보다는 실물에 무게중심이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에서 수출이 기여하는 몫은 절반에 달한다. 문제는 투자와 소비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어 수출의 공백을 메우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기금 지출 확대를 포함해 재정정책 카드를 계속 매만지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여차하면 정부가 돈을 풀어 실물경제를 떠받치겠다는 것이다. 김정관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아직까지는 실물경제가 예상보다 잘 버텨주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부 경제팀은 17일 그리스의 2차 총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쓰나미의 강도와 파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제윤 차관은 이날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 집중 모니터링 체제도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정부는 올해 성장률 수정 전망 여부와 정도, 기금 확대 규모 등 하반기 경제 정책의 방향을 그리스 총선 결과를 본 뒤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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