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발 입점을…" 동네 맛집에 사정하는 백화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4 면

지난해 8월 서울 동부이촌동의 중식당 ‘발재 반점’. 30대 중반의 남성이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먹고는 하염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세계백화점 식품팀의 이재철(37) 과장이었다. 어떻게든 발재반점 사장을 만나려고 버티는 중이었다. 기다리다 일단 포기하고 식당 직원에게 명함을 건네며 “사장님께 꼭 전해달라”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들르고, 식당으로 무작정 전화하기를 한달 넘게 한 후에야 사장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이 과장은 지난 4월 개점한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의 9층 식당가를 책임지고 있었다. ‘발재반점’이 백화점 내에 문을 열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8년 전 동부이촌동 골목에 문을 연 후 매일 손님이 늘어서는 곳이다. 이 집은 얼음꽃이 핀 모양의 ‘빙화군만두’가 인터넷과 입소문을 타고 고객을 끌어모았다. 이전에 신세계백화점 인천점ㆍ경기점에 ‘영입’하려 했지만 이미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 과장은 “이틀에 한번 꼴로 넉 달 넘게 찾아간 끝에 올초 겨우 입점 승락을 받았다”고 했다. 장사가 잘되는 에스컬레이터 옆자리를 보장해주고, 고객에 우편발송을 할 때 식당 광고를 넣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던 결과다. “서울에서 경기 주요 지역으로 거점을 넓힐 수 있는 계기”라고 설득도 했다. 이 과장은 “무엇보다 사장의 마음을 얻는 심리전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설득 과정을 통해 신세계백화점이 의정부점에 문을 연 ‘동네 맛집’은 다섯 곳.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나온 의정부 부대찌개집 ‘오뎅식당’, 부산 서면의 라면집 ‘와타루’,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의 태국식 레스토랑 ‘생 어거스틴’, 백화점엔 처음으로 매장을 낸 ‘매드포갈릭’이다. 이 과장은 “모두 콧대 높은 음식점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4~5개월씩 설득을 해야했다”고 전했다.

◇식당고객이 매출효자=이 과장뿐 아니라 요즘 백화점들은 이름난 맛집 모셔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9ㆍ10층에서 밥 먹은 손님이 아랫층으로 내려오며 돈을 쓴다’는 사실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식당가 이용고객을 분석한 결과 밥을 먹은 당일에 한 가지 이상 상품을 산 비율이 45%에 이르렀다. ‘식사한 김에 눈요기 쇼핑을 하다가 물건을 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또 식당 내방객의 10.9%는 해외패션 상품을 구매했다. 화장품을 산 사람은 8.1%였다. 합치면 식당가에서 밥을 먹은 사람 중 19%가 백화점 주력상품을 샀다는 뜻이 된다.

신세계백화점에선 식당 단골이 백화점 전체 매출을 떠받들었다. 지난해 10회 이상 식당가에서 신세계카드를 쓴 고객이 한 해 매출의 75%를 담당했다. 전체 매출 중 식품ㆍ식당가의 비중 또한 2008년 18%에서 최근 20%대로 높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먹으러 오는 고객은 멀리서도 온다’는 분석을 냈다. 지난해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점의 화장품 구매 고객 중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은 6㎞ 떨어진 광장동 주민이었다. 여성의류는 11㎞ 떨어진 봉천동 거주자가 가장 멀리 살면서 구매했다. 이에 비해 식당가는 17㎞ 거리의 염창동에서부터 와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당 고객의 충성도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맛집 찾기 총력전=2008년 현대백화점 본점엔 잠실여고 앞의 ‘나드리 김밥’이 입점했다. 신문ㆍ방송을 탄 적이 없고, 인터넷 광고조차 한 적 없는 7년 된 분식집을 잠실여고 인근에 사는 직원이 찾아내 식당가 담당자에 제보를 한 것. 특징적인 맛의 김밥은 입소문을 타 백화점 고객을 끌어모으는데 일조했다. 나드리 김밥은 지난해 현대백화점 일산 킨텍스점에도 입점했다.

이에 2009년 현대백화점은 아예 내부 통신망에 ‘식도락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식당가 담당자 뿐 아니라 모든 직원이 자유롭게 맛집 후기를 올리는 일종의 게시판이다. 현대백화점뿐 아니라 현대홈쇼핑과 현대그린푸드 같은 계열사 직원도 사진과 평가를 자신의 블로그에 쓰듯 업로드할 수 있게 했다. 계열사 전체 직원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백화점 측은 이 정보를 입점 대상 맛집 물색의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 최근 한달 50건 이상의 정보가 올라오면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네트워크를 만든 현대백화점 신현구 공산품팀장은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는 진짜배기 맛집을 찾아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식도락 네트워크 덕에 현대백화점은 서울 반포동의 ‘서호김밥’, 창전동의 케이크 전문점 ‘루시까또’, 홍대 앞의 ‘레이지마마스 파이’ 등을 찾아내 입점시켰다.

백화점들은 한켠에서 식당 확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잠실점에 ‘푸드 스트리트’를 만드는 등 식당가에 공을 들이고 있다. 3월 오픈한 경기 평촌점은 총면적 4만4600㎡(1만3500평) 중 5분의 1이 넘는 1만400㎡(3100평)를 식당과 푸드코트가 차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측은 “백화점이 잡고자 하는 ‘젊은 고객’ 또한 식당가에 몰리기 때문에 이 분야에 투자를 늘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잠실점 전체 매출 중 20대 고객은 9.4%에 불과하지만 식당 고객 중엔 28.8%로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