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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헬기사고 현장엔 '비운의 스타' 동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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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 한국인 8명 등 승객 14명을 태운 채 실종됐던 헬리콥터의 잔해가 연락두절 나흘 만인 9일(현지시간) 고산 암벽지대에서 발견됐다. 페루 당국은 탑승객들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페루 경찰과 군 당국은 이날 정오께 실종 헬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헬기로 공중 수색하다 마마로사(Mamarosa)산 해발 4950m 지점에서 사고 헬기의 잔해(사진)를 찾아냈다. 헬기가 발견된 곳은 깍아지른 듯한 바위산 협곡 지대다. 헬기는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잔해와 파편들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사고 지역의 기온은 영하 15도이며, 헬기 잔해 일부는 눈에 쌓여 얼어붙어 있는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헬기는 미국 시코르스키 항공사가 1975년 제작한 S-58ET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0일 “페루 내무장관으로부터 ‘사고 헬기가 암벽 상단에 충돌한 뒤 추락해 기체가 두 동강 난 것을 확인했고, 생존자는 없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과 관련, 이 당국자는 “사고 헬기가 바위산 상단에 부딪쳐 일어난 것으로 쿠스코 공항안전청이 결론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지 수색대는 암벽과 충돌하는 순간의 충격과 폭발로 탑승자가 모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직 탑승객의 시신을 목격하진 못한 상태다.

헬기가 발견된 지점은 공중 구조 헬기가 접근해 구조활동을 하기는 어려운 지형이다. 육상 구조대는 이날 기체 발견 지점 1㎞ 부근까지 접근했지만 험준한 지형과 기상 악화로 수색 작업을 일단 중단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페루 정부가 기존의 경찰 산악구조요원 30명에 더해 최정예 민간 고산 구조 특수요원 20명을 추가 투입했다”며 “그러나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아 본격적인 피해자 수색작업은 날이 밝아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고지역이 해발 5000m급의 고지대여서 현지 수색 대원들도 매일 1~2명씩 탈진해 교대 투입될 정도로 상황은 어렵다”고 전했다.

삼성물산 직원 4명(네덜란드인 에릭 쿠퍼 포함)과 수자원 공사직원 1명 ,한국종합기술 직원 2명, 서영엔지니어링 직원 2명 등 한국인 8명을 비롯한 헬기는 지난 6일 오후 마수코 인근 강에서 수력발전소 건설 후보지를 시찰한 뒤 쿠스코로 돌아오다 연락이 두절됐다. 사고 헬기에 탑승했던 삼성물산 소속 실종자 가족들은 10일 오후 페루로 출국했다. 이 회사 정연주 부회장도 사고 수습을 위해 이날 현지로 출국했다.

한편 실종자 가운데 삼성물산 개발사업부 소속 김효준 부장(48)은 1980년대 농구스타 고(故) 김현준 선수의 친동생으로 확인됐다. 김 선수는 ‘전자슈터’라는 별명으로 삼성농구단에서 활약하며 81년부터 12년 간 국가대표 간판선수로 뛰었다. 삼성 썬더스 농구단 코치 시절인 99년 택시를 타고 출근하다 교통사고로 39세에 세상을 떠났다.

10일 삼성물산에 따르면 김 부장은 형을 추모하기 위해 삼성농구단이 농구 유망주에 후원하는 ‘김현준장학금’ 행사에 매년 참석해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김 부장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형의 장녀를 돌봐 왔다. 김 부장은 고등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다. 이 회사 개발사업부 박창용 차장은 “김 부장은 1년 중 3분의 1 이상을 인도와 아프리카, 중남미를 직접 돌아다니며 사업을 진행해 사내에서 가장 존경받았다”고 말했다.

김 부장과 함께 실종된 한국종합기술의 전효정(48) 상무와 서영엔지니어링 임해욱(56) 전무는 '수자원기술사' 자격을 지닌 토목 엔지니어링 전문가다. 동승했던 서영엔지니어링 최영환 전무(49)도 ‘도로 및 공항기술사’ 자격을 지닌 설계 전문가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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