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는 뭐와 어울린다?뻔한 패션 공식 버리고스토리를 담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2012.06.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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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10면

뉴욕에서 패트리샤 필드가 주최한 수영복 패션쇼

-시차적응할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어제는 동대문 패션 타운에 야간 쇼핑을 다녀왔다. 뉴욕에서는 비즈니스가 끝나는 시간이면 가게도 문을 닫는다. 그래서 평일에는 쇼핑을 즐길 수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나이트 쇼핑이 가능하다. 신기한 체험이었다.”

한국과 손잡은 ‘섹스 앤 더 시티’ 의상감독 패트리샤 필드

1, 3 뉴욕 패트리샤 필드 부티크2 패트리샤 필드의 수영복 패션쇼
-2년 전 한국 브랜드 MCM과 협업을 했다. 이번엔 한국 패션을 미국 패션계에 알리는 역할이다.
“한국 정부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것은 내게도 감사한 일이고 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한국 패션산업에 대한 인상은.
“제한적인 경험밖에 없지만 한국 패션산업은 매우 액티브하고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있다. 패션 피플들은 영리하고 스마트한 아이디어와 비주얼을 갖고 있다. 옷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런 에너지는 내게 힘을 준다.”

4 세라 제시카 파커와 패트리샤 필드5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 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리프
-세 군데 한국 업체 매장을 둘러보았다. 느낌이 어땠나.
“제품 하나하나는 매우 멋지다. 그런데 이것을 스타일링할 때 좀 보수적인 것 같다. 핑크는 왜 레드 옆에 있어야 하는가. 블루와 같이 있으면 안 되나. 뭐는 뭐와 어울린다는 루틴한 공식을 버려야 한다. 패션에 스토리를 담고 내러티브로 풀어내야 한다. 이것이 나의 패션 스타일이다.”

7, 8 뉴욕 패트리샤 필드 부티크9 ‘플라스틱 아일랜드’ 사무실을 방문한 패트리사 필드10 개인적 친분으로 김연주 부티크를 방문한 패트리샤 필드
-10월 뉴욕에서 문을 열 한국 패션 팝업 스토어는 어떻게 만들 생각인가.
“세 회사의 컨셉트가 서로 다르다. 한 틀 아래서 세 제품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 중이다. 같이 온 동료 말리와 경험을 공유해 구상하고 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 아르메니안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를 둔 세탁소 집 딸이 전 세계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이 아닌가.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은 못 해봤다.”

-어떻게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됐나.
“딱히 패션을 하겠다고 덤벼들었던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세탁소를 하셨고, 삼촌은 식당을 운영했다. 난 독립적으로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어려서부터 패션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패션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다. 감각이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지는 에센스라고 생각한다.”

-첫 매장을 낸 것이 스물네 살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백화점 등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1966년 내 이름을 단 매장을 뉴욕대 주변에 냈고, 5년 뒤 확장해 이사했다. 70년대 말 디스코 열풍이 불면서 클럽에 어울리는 의상과 장신구 등을 갖다 놨는데 이런 것들이 잘나갔다. 인플레이션이 대두하면서 모든 매스컴이 돈 얘기만 했다. 사람들은 비싼 옷을 장만하기 시작했지만 장롱에 모셔둘 뿐이었다. 옷은 우리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인데. 물론 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삶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새롭고 익사이팅한 의상이 필요했다. 더 젊고, 더 싸고, 더 행복하게 해주는 옷이.”

-가게는 잘됐나.
“반응이 빨리 왔다. 특히 내가 처음 선보인 스판덱스 바지가 크게 히트를 쳤다. 바지의 기능 중 하나는 다리의 실루엣을 살려주는 것이다. 모양새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노마 카말리라는 미국 디자이너가 딱 달라붙는 스키니 팬츠를 내놨는데 나는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스판덱스라는 재료를 이용해 ‘X100’이라는 바지를 디자인했다. 이게 지금 ‘레깅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영화 ‘그리스’ 등에서 올리비아 뉴턴 존이 입고 나와 크게 화제가 됐다. 모든 매스컴이 우리 가게로 왔다.”

-왜 화제가 됐을까.
“부드럽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섹시하지 않은가.

-섹시함이 왜 중요한가.
“나는 섹시함은 파워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여자는 파워를 갖지 못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런데 여성의 몸이 바로 파워다.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파워를 갖게 된다. 섹시함이라는 말이 이전에는 ‘거리의 여인’이나 ‘성을 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나.”

-80년대 중반 친구 소개로 다이앤 레인이 나온 영화 ‘Lady Beware’에서 의상을 처음 담당하게 됐다.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패션을 매장에서 다른 장르로 옮기는 경험은 정말 소중했고 흥미진진했다.”

-1995년 영화 ‘마이애미 랩소디’에서 세라 제시카 파커를 처음 만났다. 이 영화의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은 나중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감독이 됐는데.
“데이비드는 이전에 몇 번 일을 같이한 적이 있다. 그가 세라 제시카 파커를 소개해 줬다.”

-의상 스타일링을 위해 배우들 집까지 찾아간다고 들었다. 스타일링은 인간 탐구에서 나오는 것인가.
“스타일링은 매우 개인적인 서비스다. 모든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다. 바비 인형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찾아준다. 어떤 것이 그 사람에게 어울릴 것인지 집어내기 위해서는 몸매는 기본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작품에 대한 의견이 무엇인지, 뭘 좋아하는지, 옷장 속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다못해 남자친구와는 잘 지내고 있는지까지 다 알아야 한다. 그렇게 배우의 내면에 들어가서 그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내야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다. 의상이 불편하면 연기도 불편해진다. 작품 속 캐릭터도 마찬가지로 연구한다. 배우와 작품 속 캐릭터는 처음엔 평행선인데, 그 평행선이 교차하도록 공통점을 끌어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기존의 관행을 깨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 그것이 새로운 유행이 됐다. 그러려면 안목이 중요한데, 어떻게 키워 왔나.
“나는 내 정신적인 컨디션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항상 가꾸어 왔다.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하고, 그러면서도 나만의 논리를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싫다. 아이디어는 결론이 나야 한다. 패션도 리얼 라이프가 돼야 하는 것이다.”

-실패한 적은 없는가.
“글쎄, 결과로만 볼 때 난 실패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실패는 상황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 생각을 컨트롤하게 되면 나로서는 실패겠지.”

-한국 여성들도 패션에 매우 관심이 많다. 조언을 해준다면.
“스타일링의 기본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가리는 것이다. 일본 여성도 그렇고 한국 여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다리가 상대적으로 짧다. 그런데 최근 유행을 보면 (바지 벨트 자리가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로컷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라인이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다리가 더 짧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위로 가도록 해야 한다. 모자를 쓴다거나 탱크톱 등을 착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신은 항상 연구하고 공부한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뭘 얻은 게 있나.
“정보는 원이다. 모든 방향에 다 있고 모두 연결돼 있다. 내겐 여행이 곧 일이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배운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한국에서도 멋진 사람을 많이 만났다. 사람을 통해 나는 계속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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