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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출입' 스님 "결혼 확인된 스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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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착잡한 표정으로 차를 따르고 있는 명진 스님. 그는 운동권 승려라는 별칭이 있다. 1985년 10·27 법난 때 투옥됐고, 94년 조계종 분규 때도 종단 민주화와 개혁에 앞장섰다. 2006년 봉은사 주지 임명 후 천일기도와 재정 공개 등 파격 행보로 화제가 됐다. MB와 정부 여당을 거칠게 비판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2010년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문제로 자승 총무원장과 갈등을 빚고 주지 자리를 내놓았다. [조문규 기자]

“억울한 거 없습니다. 백 번 돌 맞아도 싸지요.”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2년 전 룸살롱 출입 사실이 사람들 입에 다시 오르내리며 난처한 처지에 몰렸다. 불교계 대표적 운동권·진보인사로 정권을 향해 서슬 퍼런 독설을 날리던 그였다. 하지만 승려 도박 동영상이 공개되고, 이어지는 폭로전 속에서 그가 입은 상처는 컸다. 잊힐 만하면 다시 되살아난 과거사가 그를 괴롭혔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문제로 총무원과 갈등을 빚은 전력 때문인지 이번 사건의 배후로 의심을 받았다. 언론 접촉을 피하며 말을 아끼던 그를 지난달 25일 월악산 보광암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담담하게 이어간 인터뷰 말미에 “고문당하는 거 같다”며 곤혹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종단 전체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부처님 우신 날’이라 해야 할 판이다. 승복 입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이번 사건이 명진 스님 등 자승 총무원장 반대파가 기획한 음모라는 얘기도 있는데.

 “일부에서 나를 배후라 하는데 뒤에서 공격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내가 관련 없다는 것은 총무원도 잘 알 거다.”

●2001년 자승 스님 등과 함께 스님 4명이 ‘신밧드’ 룸살롱에 갔고 성매매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남북교류 일을 할 때 기금을 후원하던 모 스님이 찾아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식사 후 노래나 하자 해서 따라간 곳이 그 룸살롱이었다. 술은 마셨지만 성매매는 없었다. 의혹을 제기한 성호 스님도 후에 사실을 확인하고 사과했다. 그렇더라도 간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죽었으면 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당시 책임을 지고 중앙종회 부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돌을 던지고 비난하면 수백 번이라도 맞는 것이 마땅하다. 무슨 변명을 하겠나.”

●대통령과 여당을 거친 입담으로 비판하며 주로 허물을 들추는 쪽이었다. 이번에는 반대 입장이 됐는데.

 “진보·개혁 진영일수록 도덕적 잣대가 더 엄격해야 한다. 욕먹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믿고 따라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한 어린 친구가 ‘이제 스님에 대한 존경을 거두고 떠난다’는 글을 썼더라. 그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 괴로웠다.”

●종단 수뇌부가 자정과 쇄신을 다짐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는데.

 “자기 고백과 참회에서 출발하는 것이 자정이고 쇄신이다. 1907년 평양의 한 교회에서 목사·장로 등 교계 지도자들이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면서 기독교는 대부흥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잘못이 있다면 원장부터 다 드러내 고백해야 한다. 스님만 참여한 ‘범계 쇄신위’로는 한계가 있다. 화장실에 아무리 금은 단청 칠을 한다 해도 법당 안 된다. 재가자까지 포함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철저하게 쇄신해야지 적당히 시늉만 내서는 의미가 없다.”

●종단 호법부가 있는데 몰카를 찍어 외부에 폭로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내부 일을 밖으로 가져가서는 안 되지만 공정하게 하지 않고 덮으니까 사회법에 기대는 것 아닌가. 일전에도 결혼증명서까지 확인된 스님 문제가 터졌지만 이해 못할 구실을 대며 넘어갔다. 유력 인사 측근이라 흐지부지된 거다.”

●자승 스님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장 사퇴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종권 다툼으로 혼란만 커질 수 있다. 위기를 잘 수습하고 종단이 안정된 후 진퇴를 거론해도 늦지 않다.”

●이번 사건이 터진 후 자승 스님과 따로 얘기한 적 있나.

 “두 차례 얘기를 나눴다. 어느 때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라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원장도 믿을 수 있고 밖에서도 인정할 만한 분을 위원장으로 해 쇄신에 나서라고 설득했다. 현 종헌·종법상 비대위 형식은 무리라며 안 받아들이더라.”

●불교계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결국 ‘돈’ 때문이다. 총무원장, 종회의원, 주지 같은 직책을 놓고 다투는 것도 ‘돈’을 주무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불교입문서인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재색지화(財色之禍)는 심어독사(心於毒蛇)’(재물과 여색의 화는 뱀 독보다 더 심하다)라 했다. 재물을 먼저 언급한 것은 수행자에게 돈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 아니겠나.”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시주함 열쇠를 스님이 관리하면 안 된다. 재가자는 재정을, 스님은 수행·포교에 힘써야 한다. 봉은사 주지 시절 절 살림은 재가자에게 맡겨 투명하게 공개토록 했다. 스님들이 돈을 맘대로 쓰지 못하게 하면 자리 다툼도 없어질 것이다.”

●1994년 종단 분규 후 개혁 조치가 뒤따랐는데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 운동으로 원장이 사퇴하고 개혁이 추진됐다. 개혁 조치로 만들어진 종단의 선거는 하지만 지금 돈으로 얼룩져 있다. 물욕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됐다.”

●종단 선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나.

 "24개 교구 본사에서 240명, 중앙종회 의원 81명을 합해 321명이 투표로 총무원장을 뽑는다. 후보들은 본사 주지에게 2000만~3000만원, 나머지 선거인단에게 500만원 정도 뿌리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대략 30억원을 쓰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종회의원이나 주지 선거 때도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돈이 오간다.”

●도박, 골프, 여자 문제 등이 만연하다는 폭로도 나왔다.

 “극히 일부다. 문제는 이들이 중요한 소임까지 맡고 있다는 점이다. 종회 의원 중 일부는 골프를 친다. ‘골프 치며 포교하고 종단 발전을 위한 의견도 나누는데 뭐가 나쁘냐’고 말한다. 시줏돈으로 골프 치며 내기까지 하는데 그런 변명을 누가 이해하겠나.”

●하안거(夏安居·여름 동안 선방에서 수행하는 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나부터 돌아보고자 한다. 룸살롱 건이 다시 불거진 것도 교만한 나를 반성하라고 부처님이 준 기회라 생각한다.”

●스스로 교만하다고 생각하나.

 “MB 정권을 비판하고 입 바른 소리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설법을 듣기 위해 수백 명씩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우쭐해졌다. 다 깨우친 도인마냥 말하고 행동한 적도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닫으면서 “이제는 나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향해 비판의 칼날을 돌리겠다”고 마지막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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