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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실종된 정치를 찾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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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대한민국 정치가 실종되었다. 이번만이 아니다. 5년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한민국 고유의 풍토병이다. 18대 국회는 이미 종쳤고, 19대 국회가 개원을 해도 마치 초등학교 신입생처럼 반 편성하고 규칙 익히고, 위원장 자리 놓고 격돌하느라 삼복더위를 훌쩍 지날 것이다. 낯가림하는 초선의원들은 구석에 몰려 있을 터이고, 중진의원들은 유력한 대선주자에 줄 대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혹시 주류에서 이탈하면 4년이 고달플 것이므로 개원 후 서너 달은 민생보다 정치판 분위기 파악이 먼저다.

 9월부터는 이른바 대선 정국. 이거 의원들에게는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중차대한 기회다. 잘만 잡으면 차기 정권에서 장관은 물론 중요한 요직에 올라 화려한 정치 인생을 펼칠 수 있다. 그러니 민생이 문제랴, 대한민국이 어디로 표류하든 그것이 문제랴. 알쏭달쏭할 때는 용한 점쟁이한테라도 가서 내년 운세를 짚고 천운을 점지하는 부적 하나라도 하사받아야 한다. 일단 정기국회가 열리면 전국적 관심을 유발할 민감한 사안을 물고 늘어진 다음 예산안을 호통 속에 처리해주고, 차기 정권이 진용 정비를 마칠 내년 상반기까지 이대로 죽 달리면 된다. 대권 장악과 집권당 되기에 올인할 한국 정치는 내년 봄에나 귀환할 예정이다.

 4년 전, 한밤중에 달려 나가 의기양양하게 전봇대를 뽑던 청와대는 이미 날개를 접은 지 오래다. 국내정치를 주무르던 어르신들이 수인(囚人) 신세가 되거나 구속 예감에 떨고 있는 판에 어느 철없는 국무위원이 잊힌 공약들을 실행하자고 호기 있게 외치랴. 창의 깃발을 높이 들어도 언론·방송의 카메라는 이미 다른 곳에 꽂혀 있고, 시민들도 가리늦게 웬 ‘개그콘서트’인가 할 것이다. 관료들의 생존본능이 빛날 때가 바로 이즈음이다. 될 일은 늦추고, 안 될 일은 아예 손 안 대는 그 빛나는 관료적 지혜는 내년 상반기 새 정권이 바짝 조일 때를 대비하고 있다. 강(强)·약(弱)·중강(中强)·약(弱), 그 4박자 리듬에서 지금은 약(弱)의 시간, 복지부동이라는 참호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영업 준비 중인 국회’ ‘참호 속 정부’도 한심하지만, 표류하는 대한민국을 멀거니 구경만 하고 있는 대선주자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한국적 시스템이 만든 허점인데, 7개월이나 남은 대선을 앞두고 뭣 하나 그럴싸한 비전, 헤매는 한국을 다잡을 발전 개념 하나 못 내는 정치인들을 두고 저울질을 해야 하는 형편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아직 학습 중에 있는가? 아직 캠프의 선수들이 답안을 작성하지 못했는가? 1979년 영국의 대처는 ‘집단의 자유’에 짓눌린 ‘개인의 자유’를 영국병 치유를 위한 최고의 처방전으로 내걸었다. 같은 해 미국의 레이건은 ‘위대한 미국의 재건’으로 낙심한 유권자의 마음을 바로 세웠다. 클린턴은 ‘경제가 문제야’로 부시를 꺾었고, 오바마는 ‘변화!’로 등극했다. 흩어지고 찢긴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할 한마디, 정치철학이 응축된 이 한마디가 나라를 살린다.

 2012년, 정치가 실종된 이 어수선한 공백을 메울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표류 한국을 돌려세울 각성의 개념, 이념 격쟁에서 통합마당으로 우리를 이끌 정치철학은 무엇인가? 여당의 대마, 박근혜 전 대표가 말한 안민낙업(安民樂業)은 누구나 다 원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대체 어떤 원리, 어떤 철학에 입각해 있는가? 친(親)기업인가, 친노동인가? 혹은 관료에 힘을 싣는 잔소리 국가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야당의 예비주자인 문재인·김두관 역시 대중적 인기와 관심도에 비해 시대 중추를 꿰뚫는 정치 언어가 빈약하다. 복지는 답이 나와 있는데, 부자들과 중산층을 설득할 성장전략은 무엇인가? 개혁 설계도는 무엇이며, 향후 10년간 한국의 경쟁력을 높일 밑그림을 갖고 있는가? ‘구름당’ 당수 안철수에겐 아예 이런 질문이 어울리지 않는다. 사이버 구름 위에서 누가 들어도 당연한 말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에 강림해서 땀에 젖은 현장공감의 언어를 만들지 않는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의 말이 비범한 아우라를 더 이상 얻지 못할 시간이 곧 올 것이다. 마치 ‘그냥 다이렉트하게’ 현장을 공습한 나꼼수의 비속어들이 시대정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잔병처럼 널브러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실종된 정치를 찾습니다’. 전국에 방을 붙여도 찾을 수 없을 거다. 시스템 하자이기 때문에. 정치적 비용은 이렇게 크고 엄중하다. 우리의 인적 자본, 우리의 실력으로 벌써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하고 남았을 상황에 우리는 정권교체 비용을 ‘정치 실종’이란 뼈아픈 공백으로 치러왔고 지금 또 터널 초입에 들어섰다. 터널 끝은 저 푸른 초원일까? 또 한 차례 터널 속을 통과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엔 표류를 끝내줄 등댓불이 결국 켜지기나 할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