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소프라노' 칼라스 아리아 모음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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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마리아 칼라스(1923-1977)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페라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칼라스의 이름은 한 번 쯤 들어 봤을 정도로 그녀는 유명하다. 칼라스의 전설적인 이미지는 음악성도 음악성이지만 그녀가 주연했던 오페라들의 주인공만큼이나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인생, 상류사회 사교계의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외모, 그리고 언론의 과도한 관심 등이 뒤섞여 빚어진 것이다.

칼라스라는 이름은 한동안 소프라노라는 단어와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였다. 오늘날 칼라스보다 기교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는 많지만 그 누구도 칼라스만한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으며 아마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그럴 것이다. EMI에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칼라스의 복각음반 '마리아 칼라스-popular music from tv, film and opera'를 출시한 것도 아마 칼라스의 이런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되살리고 싶어서가 아닌가 한다.

이 음반에는 제목에 나타난대로 TV나 영화, 오페라 등에 자주 등장하는 가장 대중적인 곡들이 수록돼 있다.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중 '어머니의 죽음', 푸치니의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나비부인' 중 '어느 개인 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아, 그이였던가',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중 '나는 에우리디체를 잃었소' 등 소프라노가 부를 수 있는 유명 아리아들이 망라돼 있다.

복각음반인 탓에 요즘 제작돼 나오는 것만큼 상태가 깨끗하지는 않지만 칼라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올드팬들은 기꺼이 1만2천900원을 지불할 용의가 생길 듯 싶다. 이 음반을 가만히 들어 보면 과연 칼라스 매력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되씹게 된다.

캐슬린 배틀이나 바버라 보니, 안젤라 게오르규 등의 노래를 들어 보면 테크닉의 우수성이나 음색의 영롱함 등에서 분명 칼라스보다 한결 낫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와 친숙한 조수미만 해도 그렇다. 천상에서나 들었음직한 비단결같은 음색, 듣는 이의 몸에 소름이 쫙 끼치게 하는 눈부신 콜로라투라 등은 칼라스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명성은 칼라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그 해답은 아마도 칼라스만이 갖고 있는 카리스마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칼라스가 부르는 조르다노의 '어머니의 죽음'이나 글룩의 '나는 에우리디체를 잃었소'에는 분명 가슴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처연함이 있다. 확실히 칼라스는 배틀 등과 비교할 때 리릭 소프라노라기보다는 눈에 띄게 드라마틱한 음성을 갖고 있다. 성역의 넓음과 성량의 풍부함은 현대의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소프라노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벨리니의 '정결한 여신'을 부르는 칼라스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프라노의 노랫소리가 아닌, 한 시대의 낭만과 사랑, 슬픔 등을 간직한 하나의 상징이자 시대정신으로 다가온다. 50-60년대에 20대를 보낸 올드팬이라면 칼라스의 이 음반을 들으면서 낭만과 정열이 충만했던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것도 또 하나의 작은 행복일지 모른다.(서울=연합) 정 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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