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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옷에 고무장화면 준비 끝 ‘신의 선물’ 찾아다닌지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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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심마니 반미경씨는 천종을 찾아 오늘도 산을 오른다고 말한다.

“전설에나 나오는 그 신령한 산삼이 내 눈에 보일까 싶었는데 … 어느 날부터 진짜 산삼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신기했죠. 크고 작은 산삼을 한 해에 40뿌리까지 캐봤어요.”

 아산 도고면에 사는 반미경(50)씨는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간만 나면 산에 오르며 이런저런 약초를 경험으로 익혔다. 심마니들 중에는 대개 본인이나 가족 중에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반씨 역시 젊은 시절 뾰족한 병명 없이 아프고 병치레가 잦았다. 일 년이면 으레 100~200만원 가량의 한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대구에 사는 약초 전문가를 알게 되면서 약초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약초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민간요법을 접하고 약초를 캐 효소를 담가 먹으면서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떤 약초가 치유에 도움이 됐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건강을 되찾게 해 준 산은 그 자체로 보약이었다. 무엇보다 산에 다녀오면 몸이 가볍고 마음이 편해졌다. 반씨는 그렇게 10년을 넘게 산을 오른 끝에 여성 심마니가 됐다.

 심마니들이 다니는 길은 길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수북이 깔린 길은 발 밑이 바위인지 구덩이인지 구분 할 수 없다. 등산화는 무거워 고무장화를 신고, 가시덤불에 여기저기 옷이 찢기기 일쑤여서 비싼 등산복이 아닌 땀 흡수가 잘 되는 면 옷을 입는다. 작은 톱과 약초를 캐기 위한 작은 곡괭이 하나가 장비의 전부다. 산삼은 뿌리를 다치지 않게 캐야 하므로 도구 없이 일일이 손으로 캔다. 반씨는 “산삼을 찾아 하루 종일 산을 헤매지만 푹신한 땅 위에서는 피곤함을 전혀 못 느낀다”며 “오히려 산악회를 따라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두 시간만 걸어도 지치고 힘이 드니 신기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산에 오를 때는 보통 세 명의 심마니들과 팀을 이루는데, 자주 다니는 어인마니(산을 많이 알고 능선을 잘 타는 심마니)는 25~30년 경력의 심마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면 두 개의 산을 넘을 때도 있고 큰 산 하나를 넘을 때도 있다. 산은 밤(夜)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오후 4시면 서둘러 산을 내려와야 한다.

 “한번은 해가 진 후 내려오는 바람에 차를 둔 장소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어요. 능선 하나를 넘었는데 어두워지니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더군요. 안성 근처 산이었는데, 유명하고 큰 명산이 아닌 동네의 이름을 딴 산들은 그 동네사람이 아닌 바에야 알 수가 없죠. 낯선 곳인데다 산 이름을 모르니 동네 사람을 만나도 물어 볼 수가 있어야죠.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그 날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를 외친 후, 나머지 일행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심봤다’를 외치고 절을 할 정도로 귀한 산삼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행에게 보여준 후에 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내 앞에 있던 산삼이라도 먼저 발견한 사람이 그 산삼의 주인이며 다른 사람들 역시 산삼을 보고 좋은 기운을 받아 산삼을 캐라는 의미에서다.

 오래 묵은 산삼은 가격이 없을 정도로 부르는 게 값이지만 감정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꼭 필요한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의 사정에 따라 가격을 맞춰 적당한 가격에 거래하는 게 심마니들 사이의 불문율이다. 반씨도 1000만원은 족히 넘는 산삼을 캔 일이 있었다. 산삼 매장에 맡겨 판매를 하려 했지만 4개월이 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돈 이야기로 말이 많아 부정을 탔구나’ 싶어 찾는 사람이 원하는 가격에 주겠노라 일렀더니 바로 다음 날 판매가 되더란다. 반씨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주부이다 보니 당일치기 산행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모든 심마니들이 그렇듯 값을 떠나 한 번쯤 천종(天種·자연상태에서 발아 돼 자란 천연 산삼)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아요.”

 풀이 덜 자라 산삼이 가장 잘 보인다는 5~6월. 이 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산에 오른다는 반씨의 소망이 꼭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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