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연과 유적 어우러진 걷기 천국 … 서울서도 찾아와 함께 걸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걷기왕’ 이강열·홍순언씨와 천사걷기 회원들은 셋째 주 토요일 유관순 열사 사우~독립기념관에 이르는 16~25㎞ 구간을 걷는다. 회원들이 모내기를 앞둔 논길을 걷고 있는 모습. [사진=조영회 기자]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세상에 걷다 죽은 사람은 없다’

걷기 붐 조성을 위해 전국 걷기 왕들이 매달 천안을 찾는다. 대한걷기연맹 전국 공인기록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체육진흥회 홍보이사 이강열(59)씨. 그가 지난 6년간 걸은 거리는 1만㎞가 넘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경부고속도로 기준 약 425㎞) 23번 이상 간 거리다. 거리도 놀랍지만 그의 신체조건을 보면 더욱 놀랍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심폐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0살 때 늑막염을 심하게 앓은 뒤로 한쪽 폐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악조건에서도 그는 6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걸었다. 처음 그가 걷게 된 것은 2007년. 10살 이후로 한 번도 약을 먹지도 병원도 가본적 없는 그는 늘 건강을 자신해 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당뇨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혈압을 재고는 깜짝 놀랐다. 수치가 230까지 올라가는 것을 본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냐’는 말에 몸 상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이후 만사를 제치고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매일 혼자 산을 올랐는데 쉽지 않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온 적도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걷기’였다. 무릎과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았고 힘에 부치면 언제든 쉬거나 중간에 빠져 나올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걷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체력도 좋아졌다. 불과 1년 만에 혈압 수치는 정상인에 가깝게 돌아왔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포식을 해도 그만큼 운동으로 소모하니 소화도 잘되고 힘이 솟았다. 2008년엔 직접 걷기 동호회도 만들었다. 그는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가할 정도로 어느새 걷기 매니어가 돼 있었다. 그는 2010년 12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한국 걷기왕 선발대회’에서 걷기왕으로 선정됐다. 현재 천안을 비롯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며 걷기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왼쪽) 이강열씨, (오른쪽)홍순언씨

이강열씨와 함께 걷기왕으로 선정된 홍순언(62)씨 역시 8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건설회사 영업직원이었던 그는 매일 밤 접대를 위해 과음과 과식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종합검진에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고혈압과 고도비만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운동에 전념키로 다짐했다.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걷기가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는 물론 100㎞ 걷기나 10일 이상 걷는 장거리 대회에도 참여하는 등 걷기에 매료됐다. 그는 참가횟수 부문 1위를 기록해 걷기왕이 됐다.

이강열·홍순언씨는 “걷기가 얼마나 좋은지 한번쯤 걸어보면 알 수 있다”며 “천안은 걷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어서 시민들이 건강도 챙기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회비 없이 누구나 매달 셋째주 토요일 출발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확산되면서 사람들마다 걷기는 ‘돈 안들이고 건강을 지키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역에서 걷기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 주민 몇몇이 모였다.

지난해 10월 동네 주민 10명이 걷기모임을 만들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라 특별히 내세울만한 이름도 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매달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단순히 걷기만 하지 말고 걸으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의견이 모아져 천사걷기가 탄생했다.

천사걷기(천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걷기 모임)는 충절의 고장답게 유관순 열사 사우, 조병옥 박사 생가,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잡아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걷는다. 회비 없이 누구나 식사 값만 들고 나오면 된다. 점심은 주로 순대 국밥 집을 이용한다. 지역 경제도 살리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안 병천의 순대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일 오전에도 천사걷기 회원들이 유관순 열사 기념관에 집결했다. 몸을 푼 회원들은 기념사진을 찍은 후 우거진 가로수 길을 따라 조병옥 박사 생가로 향했다. 지저귀는 새 소리와 ‘졸졸’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늦은 봄 ‘하늘 아래 편안한’ 천안의 경치를 즐기는 회원들의 표정이 온화해 보였다. 길 너머 논에는 마을 주민 서너 명이 모여 모내기를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을 주민과 회원,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며 걷는 모습에서 5월의 여유로움이 흘러 넘쳤다.

3월부터 천사걷기에 온 이재국(55)씨는 아내와 함께 매번 동참하고 있다. 이씨는 등산을 즐기는 편이지만 셋째 주 토요일만은 천사걷기에 올인 한다. 등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날 이씨는 가정의 달을 맞아 처음으로 딸을 데리고 나왔다.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가족 간 소통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동안 쌓였던 아버지와 딸의 서운했던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둘 사이엔 다시 웃음 꽃이 피었다. 천사걷기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씨는 “주말마다 아내와 등산을 다녔는데 무릎도 아프고 늘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등산은 준비할 게 많은데 걷기는 편안한 복장에 신발만 신고 나오면 돼서 좋다. 천사걷기를 통해 가족도 화목해지고 몸도 건강해진 것 같아 앞으로도 빠지지 않고 늘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고 말했다.

박경화 천사걷기 회장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천사걷기에 동참하는 서울지역 회원들도 늘고 있다. 천안의 독립기념관 코스를 좋아한다. 걷기왕들도 꾸준히 이곳을 찾아 천안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천안·아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너무나 많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가지면 어느새 쌓였던 스트레스는 날아가버린다. 앞으로도 좋은 길을 발굴해 천안도 알리고 시민들과 함께 걸으며 건강한 천안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문의 041-622-6366, 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 (cafe.daum.net/scwalking)

◆대한걷기연맹 공인 기록=국제걷기연맹(IML)·대한걷기연맹(KWF) 공인 대회, 국제걷기연맹 가입국(25개국) 연맹(협회) 대회, 산하연맹 대회, 대한걷기연맹 1급 지도자 3인 이상 참여한 대회의 기록이다. 정확도·객관성에서 대한걷기연맹 집계가 잘 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 강태우 기자
사진= 조영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