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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버린 그 곳 야자수 해먹에 누워 별을 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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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마술의 섬’ 입구. 선착장에 내린 여행객들은 이 다리를 건너 마나 아일랜드 리조트로 들어간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는 ‘피지 타임’이라는 게 있었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일상에 쫓겨 허둥대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이 피지에서는 흐르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발가락을 간질이는 고운 모래, 낯선 이에게 순박한 미소를 보내는 원주민…. 피지를 상징하는 풍경들이다. 그러나 피지에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야자수 사이에 드리운 해먹에 누워 밤하늘의 남십자성을 바라봤을 때다. 손목시계의 초침과 분침이 일순 멈춰서는 기분이었다. 이방인은 어느새 자신이 떠나온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피지를 떠나는 날, 당신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외딴 바다를 수놓은 피지의 섬 330여 개. 그곳의 ‘완전한 휴식’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기에.

오직 나만을 위한 천상낙원, 야사와섬

“불라(Bula)!”

피지 남서쪽 ‘야사와섬’에 내려서자마자 ‘야사와 아일랜드 리조트’의 스태프가 반갑게 맞았다. 발음부터 경쾌한 ‘불라’는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다. 비티레부섬의 난디국제공항에서 야사와섬까지는 경비행기로 35분. 날아오면서 창공에서 내려다본 짙푸른 바다에 취한 기운이 좀체 가시지 않았다.

리조트에서 마련한 배를 타고 30분쯤 나가니 영화에서 본 낯익은 장소가 나왔다. 바로 브룩 실즈를 세계적인 청춘 스타로 만든 영화 ‘블루 라군’ 촬영지인 블루 라군 동굴이었다. 동굴 앞바다는 영화에서처럼 푸른 산호초가 무성했다. 몸을 담그면 그대로 쪽빛 물이 들 것만 같았다.

비치 피크닉에 나섰다. 파라솔 아래에서 맥주 한 병, 책 한 권을 꺼냈다. 배는 이미 무전기만 놔두고 섬을 떠난 뒤였다. 갑자기 몸과 마음이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여유가 찾아왔다. ‘야사와(Yasawa)’는 피지어로 ‘천국’이란 뜻이다. 천상낙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리조트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는데 리조트 스태프가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투숙객 가운데 한 명이 생일을 맞은 모양이었다. 체크인 때 적어낸 인적사항을 바탕으로 리조트에서 알아서 조촐한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에 반해 찾아오는 이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러브 휴잇도 그들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사실 야사와 아일랜드 리조트는 소박하다. 피지의 전통가옥 ‘부레’ 양식을 따른 객실에는 그 흔한 TV나 컴퓨터 하나 없다. 방바닥엔 종종 작은 벌레가 기어다닌다.

왜 이런 데를 세계적인 스타들이 찾는 걸까. 현지 가이드가 슬쩍 귀띔했다. “줄리아 로버츠도 여기에선 특별 대우를 받지 않아요. 다른 투숙객과 똑같이 자기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우문에 현답이었다.

1 노래로 방문객들을 반겨주는 피지 청년들. 왼쪽 귀에 꽂은 꽃은 미혼, 오른쪽은 결혼했다는 의미다. 2 경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남태평양의 에메랄드 빛 산호섬. 3 야사와 아일랜드 리조트의 허니문 부레에 걸려있는 해먹.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은 마나섬

비티레부섬의 데나라우 선착장에서 배로 1시간20분간 항해했다. 배에서 내려 얼기설기 엮은 나무 다리를 건너니 이윽고 ‘마나 아일랜드 리조트’가 나타났다.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마나섬을 널찍하게 차지하고 있어 ‘피지의 맛’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리조트였다.

마나섬은 야사와섬과 달리 비교적 북적였다. 리조트 바로 옆에 배낭 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있어서였다. 특히 호주·뉴질랜드에서 온 가족 단위 휴양객이 많았다. 리조트에서도 스노클링 등 해양 스포츠는 물론이고 피지 전통음료 ‘카바’를 마시는 의식이나 전통 춤인 ‘메케’ 공연, 반잠수함 체험 등 온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피지어로 ‘마나(Mana)’는 ‘마술’이라는 의미다. 이 섬을 방문한 사람은 마술처럼 다시 이곳을 찾아오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마나 아일랜드 리조트의 단골 투숙객인 84세의 호주 여성 오드리 미첼은 45년 동안 마나섬을 68번이나 방문했다. 그녀의 목표는 자신의 나이만큼 방문횟수를 채우는 것이라고 한다.

원하는 모든 게 있는 비티레부섬

피지의 메인 섬은 비티레부섬이다. 피지를 구성하는 330여 개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비티레부섬부터 들어가야 한다. 피지의 본부와 같은 비티레부섬에서는 정작 가볼 만한 곳이 적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비티레부섬에서 유일하게 천연 모래 해변을 갖춘 최신식 리조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인터콘티넨탈 피지 골프 리조트’다.

초승달 모양 해변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열대정원과 푸른 남태평양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피지의 전통 건축양식을 살린 리조트 지붕이 연보랏빛으로 저물어가는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에서 승마를 즐길 수도 있다. 피지에서 예부터 전해오는 따뜻한 조개 껍질을 이용한 스파 마사지도 기분 좋은 안락함을 선사해줬다.

글·사진=강원희 기자

여행정보=피지의 낮은 평균 26도로 후텁지근하지만 아침저녁은 2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므로 얇은 긴 팔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햇살이 강하므로 모자·선글라스·자외선차단제는 꼭 챙겨야 한다. 모기도 독하다. 뿌리는 모기약이 유용하다. 피지인은 머리를 만지면 영혼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어린아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건 금물. 대한항공에서 화·목·일요일 주 3회 인천~난디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10시간 정도 걸린다. 피지 관광청 02-363-7955, 한진관광 02-726-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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