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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악기값 100억 … 무진동트럭 수송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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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향이 15일 여수세계박람회장 해상무대에서 공연 을 열고 있다. 시향은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등을 연주했다. [사진 현대자동차]

오케스트라의 이동, 그것은 거대한 합창이었다. 15일 여수엑스포 야외무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투어 연주에 동행했다. 악기 운반부터 공연까지 총 36시간. 평소 보기 힘든 오케스트라의 ‘속살’을 훔쳐봤다.

주문 제작된 케이스에 들어간 ‘하프’가 지게차에 들려 무진동차에 실리고 있다.

 ◆군사작전과 흡사=14일 오전 8시 세종문화회관. 지게차 등장과 함께 악기 수송이 시작됐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소형 피아노 등 수백 종의 악기 및 물품이 운반용 박스에 담겼다. 어른 키와 비슷한 하프가 담긴 박스는 지게차로 운반됐다.

 포장부터 각별했다. 김양수 무대감독은 “사람마다 옷이 다르듯 악기마다 케이스가 다르다. 무턱대고 실으면 안 된다”고 했다. 케이스 중 절반은 독일 수입품. 비싼 건 수백만원에 이른다. 바퀴가 달린 박스 60여 개(총 3t가량)가 트럭에 실렸다. 이날 악기 운반에는 5t짜리 무진동차 등 트럭 3대가 동원됐다.

 하루 뒤인 15일 오전 8시, 단원 수송이 시작됐다. 버스 내부는 조용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은 클래식만 들을까. 아니다. 호른을 연주하는 벨라루스 출신 세르게이 아키모프는 이어폰으로 김동률의 ‘감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쉴 때는 가요를 듣는다”고 했다.

정명훈 예술감독이 15일 공연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바라보며 지휘하고 있다.

 ◆길바닥 연습도 불사=리허설 2시간 전. 개별 연습이 시작됐다. 야외연주는 따로 연습실이 없기 마련. 단원들은 객석·백스테이지에서 악기를 조율했다. 해외투어 때는 길바닥에서 하기도 한다.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라벨의 ‘볼레로’. 타악기 연주자들이 긴장하는 곡이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씨가 드럼 스틱을 두드렸다. “미리 손을 풀어주지 않으면 연주가 힘들다”고 했다. 타악기는 습도에 민감하다. 대북·탬버린의 경우 보통 가죽제품을 쓰는데 습도가 높을 때는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씨도 “가죽·플라스틱 두 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무대는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악기를 내리고, 보면대(譜面臺)를 세우고, 의자를 설치하고 등등. 바람에 악보가 날릴 것에 대비해 집게와 자석이 놓였다. 악기 보호를 위해 천막도 세워졌다. 이날 단원 100여 명이 사용한 악기의 가격은 얼추 잡아도 100억원대. 사고 위험이 있는 야외무대에서는 실내공연 때보다 조금 떨어지는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바이올린 파트의 한 단원은 “쓱~ 보면 누가 비싼 악기를 가지고 왔는지 보인다”고 했다.

 ◆작업복? 무대복?=오후 4시30분, 예정보다 30분 늦게 리허설이 시작됐다. 13분짜리 ‘볼레로’ 연주가 끝나자 정명훈 예술감독이 “처음부터 힘을 줘서 연주를 하고 마이크에서 볼륨을 줄이는 걸로 정리하자”고 말했다. 사실 야외공연은 단원들에게 ‘죽음의 무대’. 옆에 있는 악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기 마련. 이날도 단원들은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검은색 무대복(단원들은 작업복이라고 불렀다)을 입은 단원들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드디어 오후 7시 공연이 시작됐다. 2시간 남짓 연주가 끝나자 3000여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오케스트라에 투어는 악단의 연주력과 조직력을 드러내는 자리죠”라는 정 감독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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