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강홍준
논설위원

전국 38개 국립대 가운데 5개만 남았다. 20여 년간 이어져온 국립대 총장 직선제 얘기다. 경북대·목포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를 제외하고 다른 국립대에서는 철벽같던 총장 직선제가 최근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학내 정치화를 몰고온 제도의 폐해는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었으나 이 제도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정부가 돈 가지고 압박하는데 당해낼 재간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총장 직선제를 고치지 않고서는 국립대가 재정지원을 못 받을 판국인데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올해 정부가 돈을 주는 사업(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전북대를 제외하고 총장 직선제를 존치시킨 4개 대가 지원대상 순위에 못 들어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에 돈을 주느냐 마느냐의 기준을 포뮬러(수식)로 만들었는데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거나 그럴 계획인 대학은 선진화라는 항목의 지표(총점의 5%)에서 100점을 받고, 거부한 대학은 0점을 받는다. 그 결과 총장 직선제 폐지로 방향을 틀지 않고서는 돈을 받아낼 수 없게 된 셈이다.

 결국 돈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인가. 국립대와 공립대 교수들로 구성된 전국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국교련)가 얼마 전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벌여 전국 국립대 교수의 90% 이상에게서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도 지금 세상에서 등록금만 바라보고 손가락 빠는 대학은 존재할 수 없기에 도미노는 멈추지 않는다.

 국립대 교수들이 실제로 목숨만큼이나 총장 직선제를 지키고 싶어 했다면 그에 걸맞은 반대논리로 대응해야 했다. 그런데 국교련은 물론이고 어느 대학도 왜 이런 수식에 제대로 된 항변을 못하는 것일까. 통계학이나 랭킹에 의한 의사결정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통찰력만 있어도 그 함정을 간파할 수 있는데도 이런 방식으로 반대논리를 전개하는 대학 교수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교원 확보율, 장학금 지급률 등의 수치는 다들 객관적인 숫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객관적인 숫자 덩어리로 뭉쳐진 교과부의 포뮬러가 순위를 정하는 것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나 목소리를 높이며 따지고 항의하는 사람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게 수치다. 그러니 교과부도 복잡한 수식을 들이댄다.

 그렇다면 그 함정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A나라와 B나라가 있다고 하자. 평가 지표는 자연환경 지수, 고용률,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 경제적 평등 지수 네 가지라고 가정하자. 4개 지표에서 A나라는 21, 1, 1, 1점을 받았고, B나라는 6, 6, 6, 6점을 받았다. 총점은 24점이고, 평균은 6점으로 두 나라가 같다. 이제 물어보자. 두 나라가 정말 같은가. 자연환경은 아주 뛰어날지 모르나 고용률, 1인당 GDP, 경제적 평등 지수에서 형편없는 나라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A, B가 같은 나라가 될 수 없다는 걸 이해했다면 그 함정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 그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산술평균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뼛속 깊숙이 자리 잡은 산술평균은 A나라의 21점이 나머지 점수를 충분히 만회하게 만들어 B나라와 같다는 결론을 낸다.

 개인적으로 총장 직선제에 반대하기에 국교련이나 국립대에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한마디는 해주려 한다. 지금 교과부와 같은 수식을 가지고 돈 받을 대상을 랭킹으로 정하는 나라는 외국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학생 수나 교수 수 등을 기준으로 재원을 배분할 때 수식을 쓰지, 랭킹을 매기는 데 쓰지 않는다.

 수식을 써 랭킹을 매기는 교과부나 수식의 실체를 간파하지 못한 채 대학 자율만 외치는 우리의 대학들이나 단순 무식하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