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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종북까지 안을 순 없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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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논설실장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학과 대표를 뽑는 과 학생총회가 열렸다. 활동적인 친구 몇 명이 김모군을 후보로 밀기로 미리 짰다. 따로 후보로 나서는 학생이 없어 찬반 투표를 하게 됐는데, 한 복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렇게 미리 짜고 하는 게 무슨 투표냐. 정치학을 배운다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절차도 안 지키고 막후에서 결정하느냐.” 그 복학생이 민주통합당 김부겸 의원이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던 웅변가였던 그가 조그만 강의실에서 호통을 치니 후배들이 움찔했다.

 오랜 군부정권을 지나 민주화의 열망이 절실했던 때의 일이다. 막후 조정을 해서라도 민주화에 헌신할 사람을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된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나 대의원회의 의장이 된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서클연합회에서 미리 내정한 후보였다. 그래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치진 못했다.

 갑자기 그 시절이 생각나는 건 통합진보당 사태 때문이다. 구(舊)당권파(경기동부연합)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비난을 퍼부으니 그들인들 얼마나 궁색할까. 하지만 지금은 제도적 민주화가 완성됐다는 ‘87년 체제’의 끝물이다. 더구나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바로잡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지도부’의 명령을 어떻게 잘 집행할 수 있는가만 생각해야 하는 ‘충성스러운 전사들’이라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국민이 분개하는 건 두 가지다. 투표 부정과 종북(從北) 의혹이다. 절차상의 잘못은 충분히 드러났다. 현장에서 투표함을 들고 다니고, 온라인 투표에선 유령당원, 복수투표, 대리투표, 심지어 투표 중 투표함을 훔쳐보는 일까지 벌어졌다.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선거 부정이 심했던 자유당 시절에도 이렇게 막가지는 않았다. 사실상 투표자의 권리를 도둑질한 셈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 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비례대표 후보 선출은 당내 문제라 선거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비례대표 명단을 일단 선관위에 제출하면 바꿀 수가 없다. 출당(黜黨)을 해도 의원직은 갖고 나간다. 국회에서 제명이나 자격심사를 하는 수도 있지만 요건이 안 된다. 행정부나 사법기관, 동료의원의 판단보다 유권자의 결정을 존중해 정당정치를 보호하려는 게 법의 취지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 사각지대가 발견된 셈이다. 이 기회에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과거에 없던 당내 경선이 많아졌다. 이 과정의 부정은 처벌할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는 여론을 업고 시작됐다. 당내 부정선거, 폭력사태와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으면 의원직을 잃게 되니 답답하던 상황에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표적 별건 수사’라는 비판은 면할 수가 없다. 비록 이번 개입은 여론의 지지가 있다고 해도 자정 노력을 기다리지 못한 것이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또 한 가지는 종북 문제다. 국민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사실 이 대목이다. 구당권파 대부분이 과거 주사파로 활동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처벌을 받은 뒤 한번도 이를 시인하거나 전향한 적이 없다. 누가 물어도 색깔론, 사상의 자유를 내세워 답변을 피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집을 지어주는 일종의 건축업자에 불과하다. 주인이 ‘벽 장식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데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지 마라’고 묵살할 수는 없다. 일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상 집은 내 취향대로 지을 테니 백지수표를 내놓으라는 꼴이다.

 그러나 선거 부정과 달리 이 부분은 아직 분명히 드러난 게 없다. 과거의 행적, 의심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헌법재판소가 해산을 명령할 수 있지만 반민주적 목적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그러한 구체적 활동이 드러난 것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유권자의 판단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국민이 진보라고 다 같은 진보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건 큰 수확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모습까지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 진보정치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덕분이고, 민주주의 체제가 가진 자정능력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국민이 아닌 ‘수령’의 지시를 받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까지 끌어안을 순 없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건전한 진보세력까지 제도권 밖으로 몰아내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체제를 지킨다며 오히려 정당정치, 우리 체제의 건전성을 치명적으로 후퇴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