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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낙하산 인턴님’ 골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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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수연
경제부문 기자

“이맘때면 인턴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청탁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걸 정리하는 것도 대표가 처리해야 할 주요 업무 중 하나예요. ”

 얼마 전 한 글로벌 금융사의 한국 대표는 ‘괴롭다’고 반복하며 말을 이었다.

 “뽑을 수 있는 인턴사원의 숫자는 정해져 있지요. 그런데 거래처는 물론이고 정·관계, 동종업계 관계자, 혈연·지연·학연을 동원한 지인까지 온갖 곳에서 청탁을 해옵니다.”

 금융업은 네트워크가 장사 밑천이다. 업종 특성상 청탁을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렵다. 이 대표가 ‘괴롭다’는 말을 반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어떤 청탁은 적절히 들어주고, 어떤 청탁은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정중히 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유학생이 쏟아져 들어온다. 대부분 방학을 이용해 인턴 경력 쌓기를 원한다. 글로벌 금융사는 그중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렇듯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제가 길게 줄을 서니 평범한 학생에게는 거의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국내 금융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내 금융사 대표는 ‘청탁 해소용’으로 별도 인턴을 뽑는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인턴사원을 정규 공채의 한 절차로 활용한다. 필요 인원의 몇 배수를 인턴으로 뽑아 평가한 뒤 그중 일부를 정식 사원으로 선발한다. 이렇게 채용과 연계된 인턴은 철저히 능력 위주로 뽑는다. 대신 이와 별도로 인턴만 하는 조건으로 청탁받은 학생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취업문 뚫기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요즘 젊은이 사이에 인턴은 필수 ‘스펙’이다. 그런데 문을 통과하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부터 공정치 않은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인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외국계 금융사 대표는 곧 방학을 맞는 대학생 딸에게 “스스로 알아보라, 그래서 안 되면 봉사활동이나 여행을 하라”고 잘라 말했다고 했다. 스스로 수없이 청탁을 받아 보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또 수많은 지도층 인사 자제를 ‘인턴님’으로 모셔본 내부 직원들이 ‘공정한 기회가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한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수도권이나 명문대 출신은 배제하는 파격 인턴 공채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소신 기업이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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