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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집토끼’경영 …‘산토끼’도 불러들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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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북 문경시에서 활동하는 교보생명 설계사 구춘희(55)씨는 요즘 갈 곳이 많다. 지난해 6월 회사에서 “새 고객 찾기보다 기존 고객부터 만나라”고 독려하면서다. 자신을 통해 보험에 든 고객들 명단을 뽑아 지역별로 묶은 뒤 하루 두세 명씩 만난다. 구 설계사는 “처음엔 ‘보험 더 가입하라고 그러느냐’던 고객들이 가입한 보험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 주니 고마워한다. 얼마 전엔 보험이 만료된 줄 알고 있었던 고객에게 입원금 400만원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지난 1년 새 그는 자신의 고객 768명 중 633명(82.4%)을 방문했다. 거의 기존 고객만 만났는데도 신규 계약 실적은 오히려 늘었다. “고마워서인지 든든해서인지 새로 보험 들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을 주세요. 다른 분들도 소개해 주시고요.”

 교보생명의 ‘집토끼 경영’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신창재(사진) 회장이 “새 고객(산토끼)을 좇기보다 기존 고객(집토끼) 대상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며 ‘평생든든서비스’를 발족한 지 1년. 보험계약 유지율이 눈에 띄게 올랐고, 신규 계약도 느는 추세다.

 평생든든서비스는 포화된 보험시장에 대한 고민과 판매 중심의 영업관행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신 회장은 지난해 봄 임원회의에서 “고객은 우리가 신규 계약을 얼마나 하는지 관심이 없는데, 우리는 신규 계약에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길게 보라”는 주문도 했다. “추가로 보험 가입을 할 것 같은 손님들을 찾아다닐 게 아니라 모든 가입 고객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유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이후 교보생명 설계사들은 1년 사이 전체 고객(345만 명)의 절반 가까운 165만 명을 만났다. 이를 통해 고객 1만9900여 명이 못 챙기고 있던 보험금 105억원을 찾아줬다.

 길게 보고 시작한 서비스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서비스 개시 전인 2011년 4월, 교보생명의 13회차 계약유지율은 78.8%에 불과했다. 당시 업계 평균(79%)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수치는 올 4월 82.1%로 올랐다. 1년 이상 보험계약을 유지하는 고객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설계사들이 기존 고객을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많이 썼는데도 신규 계약은 줄지 않았다. 올 1분기에 체결된 신규 계약은 8만1600여 건으로 지난해 1분기(8만800여 건)보다 많았다. 김욱 마케팅기획팀 상무는 “처음엔 ‘신규 계약은 언제 하느냐’고 반발하던 영업 현장에서 요즘은 ‘이렇게 고객들 만나는 게 영업에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의 ‘집토끼 경영’은 최근 일본에서 우군을 찾았다. 일본 메이지야스다생명 세키구치 겐이치 회장이다. 이 회사는 기존 고객을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안심 서비스’로 유명하다. 13회차 계약유지율이 지난해 상반기 94%에 육박할 만큼 고객 만족도가 높다. 두 회장은 올부터 상대방 회사를 교차 방문해 고객 서비스를 잘한 설계사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세키구치 회장은 25일 방한해 ‘평생든든서비스’를 잘 실천한 교보생명 설계사에게 ‘메이지야스다생명 특별상’을 준다.

신 회장도 다음 달 초 ‘교보생명 특별상’을 주러 일본에 간다. 교보생명은 “신 회장은 최근 변액보험 수익률 논란이 인 것도 ‘기존 고객에게 충분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며 “고객 만족도를 높여 2015년까지 13회차 계약유지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13회차 계약유지율

보험에 가입한 이후 13차례까지 보험료를 낸 고객의 비율. 보통 달마다 보험료를 납부하기 때문에 13개월까지, 즉 1년이 넘게 계약을 유지한 고객이 얼마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유지율이 낮을수록 허수 가입자, 즉 잠시 가입했다가 해지하는 가입자가 많았다는 걸 뜻한다. 보다 장기적인 유지율을 보는 지표로 25회차 계약유지율도 쓰인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말말말

“진정한 떡장수는 많이 파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떡을 만들어 고객에게 줄까를 고민한다. 그 대가로 더 많은 떡을 파는 거다.” <지난해 4월 평생든든서비스를 설명하며>

“사과를 오렌지라고 팔아놓고 이제 와서 ‘사과입니다’ 얘기하는 게 모순이다. 변액연금을 펀드인 것처럼 판 것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 ” <지난달 임원회의에서>

“평생든든서비스가 형식적 방문에 그쳐선 안 된다. 보장 내용을 사전에 정확히 설명해 주고, 놓친 보험금 안내도 해 야 한다.” <최근 임직원 오찬 대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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