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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벽 넘어 ‘또 다른 삶’ 로망 이룬 세 남자 (2)

중앙일보

입력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현실의 벽에 막혀 그러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다. 남자들의 꿈은 단순한 취미생활에 그쳐야만 하는 걸까. 여기에 직업과 함께
또 다른 자신의 꿈을 온 몸으로 밀고 나가며 주목 받고 있는 3명의 멋진 남자들을 소개한다.

#1 강레오

 ‘초심’을 중요시하는 자세, 끝없는 배움의 길. 요리와 합기도의 공통점이다. 일주일에 3번, 서울 신촌에 위치한 도장에서 합기도를 연마하고 있는 강레오(36)씨는 이 같은 ‘대가정신’에 충실한 무도인이자 셰프다. 강씨는 양식 레스토랑 ‘마카로니 마켓’의 총괄 셰프이자, 대한합기도회이사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졌던 강씨는 뛰어난 스승들을 찾아 다니며 요리를 배운 정통파 셰프다. 그는 피에르 코프만, 장 조지와 같은 세계적인 셰프로부터 요리를 배웠다. 두바이 ‘고든 램지’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Chef de Cusine)를 맡았고 현재는 마카로니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요리를 시작한지 20년이 된 그는 케이블채널 올리브 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그런 그가 처음 합기도를 시작한 것은 약 5년 전이다. 평소 태권도, 이종격투기와 같은 다양한 무술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합기도 특유의 절도 있는 동작과 패기에 반하게 됐다.

 강씨는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이 물 흐르듯 동작을 이어가며 젊은 사람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고 합기도의 매력에 빠졌다”며 “요리 이외의 모든 시간을 합기도에 쏟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합기도회 이사로써 매년 열리는 연무대회와,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일본 세계본부 관계자들과의 정례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자신의 승단심사가 있어 합기도 연마에도 여념이 없다.

 강씨는 요리와 합기도 모두에서 ‘자만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요리의 경우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실력이 굳어질 수도 있어 항상 배우려고 하는 초심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또 다른 선생님이 나타난다면 나는 또 초보자가 되어 그에게서 요리를 배울 것”이라는 그는 “요리도 운동도 죽는 순간까지 배울 것이다. 배움의 연속이다”고 말했다.

 요리와 합기도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꾸준한 수련을 통해 팀워크와 리더의 역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며,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강씨는 “리더로서의 마음가짐을 합기도에서 배울 수 있었는데 이는 요리 분야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존경 받는 요리사’는 그의 꿈의 한 축이다. 그는 “요리사가 크게 존중 받거나 하는 직업이 아니었지만 많은 분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달라진 것 같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존중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존중을 넘어 존경 받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 “자신의 음식으로 국가의 격을 높이는 셰프들이 많은데, 그런 셰프가 목표”라고 밝힌다.

 또 다른 그의 꿈의 축은 ‘멋진 무도인 할아버지’다. 처음 합기도를 시작하게 만든 계기도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여러 ‘훌륭한 노인’상이 제시되고 있지만 강씨에게 멋진 할아버지는 단순히 돈이 많거나 괜찮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그런 할아버지가 아니다. 강씨는 “합기도나 요리를 가르치며, 단단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그는 지금도 열심히 운동과 요리를 하고 있다.

#2 황인철

 “안녕하세요, 황인철입니다.” 그가 건넨 갈색 명함을 손에 들었다.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산부인과 교수 황인철’이라 쓰여있다. 명함을 뒤집어봤다. 그러자 뜻밖의 반전이 나타났다. 뜻 모를 열 다섯 글자, ‘아기 받는 남자의 아주 특별한 레시피’가 새겨져 있다. ‘아기 받는 남자’까지는 알겠는데, ‘아주 특별한 레시피’라… 그의 은밀한 이중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몸과 마음이 고달팠던 인턴·레지던트 시절, 황씨의 유일한 스트레스 돌파구는 케이블TV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었다. 황씨는 “요리프로그램을 보며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 시절에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정리한 레시피가 책 한 권 분량을 넘는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요리에 심취해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모아 둔 요리 비책은 전문의가 되어서야 펼쳐볼 수 있었다. 그때 마침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다.

 “명색이 산부인과 의사인데, 임신한 아내를 위해 외조 한번 멋지게 해주고 싶었어요.” 황씨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위해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다. 아내의 반응은 두 말할 것 없이 좋았고, 그런 아내를 보자 황씨도 흥이 났다. 하지만 요리사로서 황씨의 삶에도 난관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2인분 정량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손이 큰 탓에 음식은 매번 남기 일쑤였고, 사람 좋아하는 황씨는 주위 사람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은 또 한번 황씨를 춤추게 했다. 요리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blog.daum.net/drcook)를 만들었고, 그렇게 파워블로거가 돼 어느새 카페까지 차리고 있었다. 카페는 삼성동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아기 받는 남자’다.

 황씨의 일주일 스케줄을 듣고 있자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구미로 내려가 외래진료를 본다. 화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수술 일정을 잡는 날이다. 주말이라고 녹록하지 않다. 3주마다 한번씩 병원에서 당직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카페를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시간은 화·목·금요일 중 수술이 없는 날과 당직 주를 제외한 주말이다(평상시에는 아내가 그 자리를 지킨다). 이 외에도 짬짬이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고 쿠킹 클래스의 강의를 맡으며 책까지 집필하고 있다.

 이쯤 되자 그가 왜 이렇게까지 이중 생활에 고집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의외의 대답을 내 놓았다. “저는 새로 시작한 이 일이 오히려 산부인과 진료의 연장선이라 생각해요. 산모들은 밥을 먹다 ‘욱’하고 올라오는 기운에 처음 임신을 눈치채요. 한동안 입덧을 하며 먹는 걸로 고생하다가, 만 3개월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먹을걸 막 찾죠. 결국 음식은 순산을 이끄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죠.”

 앞으로 그는 산모들의 식사법이 임신중독과 임신당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문에 집중할 계획이란다. 산모들이 보다 건강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방법과, 출산 후 여성들이 보다 자신감 있게 몸매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다. 물론 여기에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해주면 좋을 요리들도 함께라고 하니, 남편들이여 기대하시라

#3 이영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누구보다 바쁜 샐러리맨인 이영(43)씨. 그는 하루에 수 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담덕공자의 캐릭터 밥상(blog.naver.com/king700203)’을 운영하는 캐릭터 도시락 제작자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서는 이미 유명한 그의 블로그에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도시락들이 업데이트되곤 한다. 미키마우스·수퍼마리오와 같은 만화·게임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도시락들이다. 그가 이런 도시락을 만든 지도 벌써 7년이 됐다.

 그가 처음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게 된 것은 딸때문이었다. 당시 7살이었던 딸의 유치원 소풍날,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도시락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불모지에 가까웠던 ‘캐릭터 도시락 제작계’에서 홀로 작업하던 이씨는 2005년부터 블로그에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올리기 시작했다. 점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캐릭터 도시락 제작과 관련된 특강 요청까지 들어왔다.

 “어릴 때 소풍을 간다고 하면 온 가족이 나서 챙겨줘 도시락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는 이씨는 요즘은 그런 것이 없어 아쉽다고 한다. 그는 “전문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챙겨보내는 부모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아이에게 조금은 다른 도시락을 만들어 주려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며 웃었다.

 실제 ‘담덕공자’ 이씨가 만드는 캐릭터 도시락은 종류가 1000여 가지에 달한다. 톰과 제리,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 라이언킹과 같은 외국 캐릭터에서부터 둘리처럼 친근한 국내 캐릭터들까지 총 망라돼 있다. 처음 보면 도시락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정교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처음에는 아이들 도시락을 만들려는 주부들이 주로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러나 곧 찾는 이들이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다양해졌다. 선물을 하기 위해 그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많이 방문한다. 그의 블로그에는 사진과 함께 레시피도 잘 소개되어 있다.

 이씨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알아낸 다음, 도시락으로 만들어 준다면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샐러리맨이기도 한 이씨가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고 이를 블로그에 올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노력이 든다. 주로 주말을 이용해 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날 때는 간간히 주중에도 도시락을 만든다. 도시락 만들기에는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까지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찾고 레시피를 연구하는 등 준비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은 만만치 않다.

 힘이 들어도 그는 새로운 캐릭터도시락을 연구하고, 자신의 레시피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위해 강의 다니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는 직장인, 주부, 학생 누구든 캐릭터 도시락으로 즐겁게 식사하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근 이씨는 이야기가 담긴, ‘스토리텔링’ 도시락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야기를 도시락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첫 날에는 햄과 상추를 활용해 숲 속의 사자 모양을 만들고, 둘째 날에는 여기에 계란 부침으로 만든 그물을 덧씌워 위기에 빠진 사자를 표현하는 식이다. “내일은 어떤 도시락이 나올지 궁금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늘 즐겁다”고 이씨는 말한다.

<김록환·한다혜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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