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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도박 파문 수습의 길은 …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에게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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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8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만난 충남 예산군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말투는 온화했지만 승려 도박 사건 등을 둘러싼 조계종 내분을 꾸짖는 죽비는 매서웠다. [프리랜서 김성태]

28일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왔다. 한데 불교 조계종은 어수선하다. 일부 승려들의 도박 동영상 파문 때문이다. 총무원은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민심은 쉽게 회복될 것 같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일 충남 예산 수덕사를 찾아 방장(方丈) 설정(雪靖·70)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이(理)와 사(事)를 두루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이다. 수행정진과 사찰행정 모두 신망이 두텁다. 이른바 ‘종단정치’에 관여하다가도 맡은 소임에서 놓여나면 곧바로 선방으로 달려가 수행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1998년의 에피소드다. 그는 4년간의 중앙종회 의장 직을 마치자마자 경북 문경의 봉암사 선방으로 달려갔다. 모든 걸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꼬박 3년을 정진했다. 지병(암)도 차도를 보였다고 한다.

 스님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논리가 분명했고, 잘못된 일에 대한 비판 논리는 단호했다.

 - 불교 자체에 실망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를 만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동영상에 찍힌 사람들은) 내가 다 아는 사람들인데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나이 먹다 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튀어나가 사람들 모아 놓고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보자고 하겠는데…. 어떤 면에서는 잘 터졌다고 생각한다. 주식이 밑바닥을 치도록 내버려 둔 후 재정비를 한다고 할까, 그 이후에 곪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나.

 “한국 불교는 조선조 500년간 억압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말살정책에 휘말렸다. 일제의 유도에 따라 승려들 대부분이 결혼을 했다. 부처님 율법에 따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습만 승려일 뿐 내적으로는 타락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시작된 게 1954년 종단 정화운동이다. 192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선학원이 중심이 돼 수덕사 출신 만공 선사 등 460명 정도의 승려가 참여했다. 한데 어떤 면에서 이분들은 정화 의지만 투철했지 경험이나 지식 등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그렇다 보니 운영의 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고, 숱한 싸움이 벌어졌다. 각목과 화염병이 난무하고 깡패를 동원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불교로 봐서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절 재산은 탕진됐고, 인재 양성은 소홀히 하게 됐다. 불교의 근대화 과정이 부실했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사찰의 주지, 종권(宗權) 등이 주어지게 됐고, 이번 파문은 그런 폐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종단에 영향력이 큰 승려들 사이에 유흥문화가 일상화된 건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 숫자는 한정돼 있다고 본다. 제대로 수행하는 대부분의 승려들은 이번 사태를 참으로 좋지 않게 보고 있다. 이번 일로 좋지 않았던 이제까지의 흐름이 한번 걸러질 거라고 본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누가 속이고 감춘다고 나쁜 일이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다. 모든 정보가 금세 공유되지 않나.”

 - 문제 있는 소수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나. 이른바 ‘인적 청산’이 돼야 하나.

 “자연스럽게 교체되리라 생각한다. 문제 있는 수행자는 자연스러운 승려 공동체의 요구 속에 변화되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진짜 위기가 올 것이다.”

 - 일부에서는 총무원장을 교체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에도 제도적 개혁은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람이 바뀐다고 변화가 곧바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바꾸려는 사람들의 자질·의지·역량 등이 분명할 때 개혁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단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추려 교단을 바꿔 나가야 한다. 비대위를 구성한다고 지금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려다가는 자칫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

 - 현 집행부에 그런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나.

 “자기모순에 빠진 사람도 모순을 인식하고 고치려고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패거리주의다. 패거리주의는 이익집단이나 하는 짓이다.”

 - 종책모임도 패거리에 포함되나.

 “그렇다. 종단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자기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에 교단의 화합이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해발 495m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은 수덕사는 하루라도 손수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규율로 유명한 곳이다. 근대 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받는 경허(鏡虛·1846∼1912) 선사, 그의 수제자로 일제 총독부의 불교 정책을 대놓고 비판했던 만공(滿空·1871~1946) 선사 등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설정 스님은 열세 살에 출가해 30대 초반에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왜 뒤늦게 세속의 학교를 다녔느냐고 묻자 스님은 “미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 이력답게 스님은 현 사태에 대한 해답을 역시 교육에서 찾았다.

 -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하나.

 “교육이다. 교육이고 수련시키는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미흡하다. 물론 선방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정진하는 승려도 상당수이지만 소위 포교나 사찰 행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은 상당히 부족하다. 구멍가게에서도 사람들 교육을 열심히 시키는데…. 자꾸 훈련시키고 훈습시켜서 변화하고 각성하게 해야 한다.”

 - 곧 초파일이다. 중생과 절집에 한 말씀 하신다면.

 “승단의 한 사람으로 국민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경책의 회초리는 달게 받겠지만, 너무 절망스러운 상황이라고 여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과정이 불교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신자들도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항상 자기를 가꾸는 소신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지금보다 좋은 시기를 맞으리라 확신한다.”

◆방장(方丈)=총림(叢林)의 최고 어른을 말한다. 총림은 경전을 교육하는 강원, 참선수행을 가르치는 선원, 계율을 교육하는 율원 등 세 교육기관을 모두 갖춘 사찰이다. 국내에는 송광사·해인사·통도사·백양사·수덕사 5개의 총림이 있다. 방장은 교구 본사의 주지 임명권을 갖는다. 임기는 10년이고 한 차례 중임할 수 있지만 대개 연로한 나이에 추대되기 때문에 사실상 종신직이라고 보면 된다. 설정 스님은 2009년 방장에 취임했다.

설정 스님은

1942년 충남 예산 출생
55년 원남 스님을 은사로 출가. 아버지와 함께 예산 수덕사를 찾았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음
61년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계 받음
76년 서울대 원예학과 졸업. 절에 딸린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농대 선택
78년 수덕사 주지
94년 조계종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96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2006년 서울 화계사 회주(현재)
2009년 수덕사 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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