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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아내 … 머리가 좋은 걸까 외로운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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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인터넷에서 꽤 화제가 된 가상 문답이 있다. 여자가 묻는다. “오빠, 나 살 쪘어?” 남자는 부정도 해보고, 동의도 해 보고, 답을 피해도 본다. 여자의 결론은 한결같다. “아닌데? 우리 헤어져.” 남성들의 댓글이 주르르 달렸다.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여성이) 작정하고 덤비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남자에겐 오묘하기 짝이 없는 여자만의 ‘의식의 흐름’, 이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캐릭터가 있으니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이다. 정인은 세상사 대부분이 맘에 안 든다. 특히 남편의 언행이 그러한데, 이를 조금도 숨김없이 다 내쏜다. 남편은 어떻게든 언쟁을 피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정인은 말꼬리 잡기 대마왕이다. A로 시작한 얘기는 B로 갔다가, 어느새 C에서 F로 넘어간다. 미치겠는데 언뜻 들어선 허점이 없다. 남편은 감당이 안 된다. 오죽하면 옆집 사는 ‘마성의 카사노바’ 성기에게 아내를 꼬셔 달라 애원할까.

 영화 보는 내내 속으로 ‘어머, 어머…’ 했다. 도돌이표 같은 말싸움이 별 실효 없다는 걸 깨닫기 전 나 자신부터, 주변 몇몇 이들의 얼굴이 연달아 떠오른 때문이다. 불평 많은 배우자는 상대를 지치게 한다.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의 저자 이상헌 칼럼니스트는 “문제가 발견되면 즉각 공격하는, 서로를 수사관의 시각으로 보는 부부가 있다”고 했다. 남 앞에서 상대를 쉽게 모욕하며 이를 제 승리로 착각하지만 실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미국의 심리 카운슬러 바버라 H 레바인은 저서 『긍정의 말이 몸을 살린다』에 이렇게 적었다. ‘감정을 안으로 숨겨 몸 안에 쌓아두면 자신도 모르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 특히 분노와 같은 감정은 급속하게 축적된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떠넘기게 된다. 그런가 하면 미처 풀어버리지 못한 슬픔의 감정으로 인해 아무런 관련도 없는 상황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아내 혹은 여자친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려 난감했던 기억이 남자라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이는 영화 속 정인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편과의 소통 부재에 좌절한 정인은 그 외로움을 독설로 표출한다. 날 봐 달라는, 지금 몹시 힘들다는 SOS다. 남편은 못 알아챈 그 신호를 성기는 감지한다. 아마도 성기를 무적의 카사노바로 만든 건 바로 그 예민한 촉(觸)일 것이다. 혹 지금 당신 아내가 심하게 짜증스러운가. 매사 부정적 말로 당신 힘을 빼고 있다면 정색하고 그 가슴속 고민이 뭔지 묻는 건 어떨까. 영화 속 성기처럼 "멋있다” "대단하다” 솔직히 칭찬한다면? “갑자기 왜 이래” 하면서도 돌아서 웃을 것이다. 처녀 적 그 예쁜 미소로.

글=이나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