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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마켓워치] 안갯속 ‘유로존 열차’… 한두 달은 쉬어 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마주 달리는 열차에 속도가 붙고 있다. 양쪽 다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이를 악문다. 열차 충돌로 생길 화염을 피하려는 행렬이 벌써부터 길을 메운다. 대충돌은 바로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탈퇴다. 실제 일어난다면 충격파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그리스 열차만 탈선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충돌의 화염이 방화벽을 뚫고 스페인·이탈리아까지 덮치면 글로벌 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게 분명하다.

 충돌을 기정사실화하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씨티그룹은 그 확률을 75%로 봤다. 대단히 높은 수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전문가가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두 열차가 비켜갈 것이란 쪽에 베팅한다. 양쪽 다 충돌이 몰고 올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서로 원하지 않았더라도 벼랑 끝 대치를 지속하다 보면 힘이 빠지고, 자칫 헛발을 디뎌 절벽 아래로 나뒹굴지도 모른다. 끝까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그리스가 2차 총선을 치르는 다음달 17일까지는 열차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총선 뒤에는 충돌이냐 아니냐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본격 연출될 전망이다. 지금으로선 재정긴축안을 파기하겠다는 좌파연합의 집권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그리스의 새 정부는 유로존 탈퇴의 카드를 무기로 독일에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독일은 “말도 안 되는 억지며, 양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그러면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강력히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그리스 국민도 70%가 유로존 탈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긴축의 완화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지 유로화는 계속 쓰겠다는 심산이다. 말이 유로존 탈퇴지, 국민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모든 대외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새로운 자국 통화가 휴지 조각 취급을 받을 경우 기업 활동과 치안·교통이 마비되고 병원까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독일 또한 감당하기 힘든 위험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당장 그리스에 지원한 1000억 유로(148조원)를 날리게 된다. 유럽연합(EU) 전체가 떼이는 돈은 1조 유로(148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쓰러지면 유로존 자체가 해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게 독일의 막판 양보 시나리오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인플레를 감수하며 유럽 국가들의 재정을 직접 지원했던 ‘마셜 플랜’ 같은 처방이다. 그리스가 유로화를 쓰면서 재무부 쿠폰 형태의 자국 통화를 겸용하는 ‘2중 통화시스템’을 갖게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아직도 기다리기엔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리스 총선까지 한 달이고, 이후 줄다리기에 또 한두 달은 걸릴 수 있다. 시장은 온갖 억측과 공포에 휩싸여 롤러코스트를 타게 될 것이다. 유럽계 투자자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주식을 계속 던지며 주가 하락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하지만 영원한 위기는 없다. 위기가 클수록 좋은 기회가 따라오는 법이다. 일단 쉬는 것도 투자라는 자세로 실탄을 축적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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