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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독일 패망 배후엔 히틀러의 오판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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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3제국
크리스 비숍 외 지음
박수민 옮김
플래닛미디어
536쪽, 2만9800원

군사 마니아들이 좋아할 책이다. 영국의 군사(軍史)학자와 합동지휘참모대학 교관이 함께 전략전술에 초점을 맞춰 제2차 세계대전사를 복기했다. 핀란드와 소련이 벌인 ‘겨울전쟁’, 세계대전이 본격 발발하기 전의 ‘가짜전쟁’, 미영 연합군 16만여 명의 시칠리아 상륙작전인 ‘허스키 작전’ 등등. 당시 작전도 등 희귀 자료도 공개된다.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융단 폭격’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 중 하나. 영국 공군의 폭격기사령부는 1942년 지역폭격 개념을 도입했다. 사령관 아서 해리스는 도시 전체를 공격하면 민간인 사상자 발생은 불가피하지만 산업시설을 파괴해 지상군 동원 없이 공습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1942년 5월 훈련부대 항공기까지 끌어 모아 1000대가 넘는 항공기로 독일 쾰른을 초토화하는 ‘밀레니엄 작전’을 폈다.

 전쟁에 관심이 덜한 독자라면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이란 면에 주목해 읽을 만하다. 2차대전의 결정적 고비가 된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보자. ‘예비역 상병’ 히틀러는 연합군의 대반격을 대비하며 실수를 거듭한다. 우선 히틀러는 연합군의 상륙지점을 노르웨이로 확신했다. 프랑스 공격에 비해 보급선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가능성이 낮았는데도 노르웨이 해안 방어시설 구축에 최우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1942년 8월 벌인 프랑스 디에프 상륙작전이 실패한 뒤에도 상륙부대가 해안으로 다가오는 순간 공격해야 한다는 롬멜 장군의 제안을 무시하고 기갑부대를 자신이 직접 통제하기로 결정해 작전통제의 융통성을 잃었다.

 상륙 후 연합군과 독일군이 몇 주 동안 일진일퇴를 하던 1944년 7월 히틀러는 서부전선사령관을 ‘예스맨’인 폰 클루게로 교체하고는 무조건 버티라는 명령을 내렸다. 게다가 암살미수 사건 이후엔 자신의 견해와 다른 어떤 건의도 듣지 않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장악해 전방의 독일군 지휘관들은 소규모 부대이동조차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생산력이나 병력의 규모에서 독일은 미국과 소련에 견줄 바가 아니었으므로 어찌됐건 전쟁은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귀결됐겠지만 이를 가속화한 것은 지도자 히틀러였던 셈이다. 전쟁이란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세밀화이기도 하고 지도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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