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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획이다] 'god신화' 정해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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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HOT ·S.E.S ·신화...음반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성공한’신세대 그룹들이다.

유보적인 의미를 담은 따옴표를 붙인 것은 이들의 음악적 성취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아무튼 이들의 성공 요인을 설명하는데 뺄 수 없는 이름이 있다.정해익(丁海益 ·35).

정씨의 현재 공식 직함은 ㈜사이더스 사업본부 음반사업본부장.㈜사이더스는 1999년 영화사 우노필름과 매니지먼트기획사 EBM이 벤처기업 로커스와 손잡고 만든 국내 최대의 종합엔터테인먼트 전문업체다.

일반인들에겐 그의 이름은 낯설다. 앞에 나서는 일 없이 뒤에서 기획·마케팅·홍보를 전담해왔기 때문이다. '기획의 힘' 으로 음반 업계의 뉴파워가 된 그는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상경, 공무원으로 일하다 음반업계에 뛰어들었다.

군복무를 마친 90년 가수 이수만씨를 지인의 소개로 만난 것. 제작자로 변신한 이씨가 현 SM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SM기획을 만든 직후였다.

운전도 하고 스케줄도 챙기고 가방도 운반하는 말단 매니저부터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의 2인자로 성장한 그는 96년 그룹 HOT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면서 본격적으로 '기획 인생' 을 시작했다.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10대의 정서를 대변할 신세대 그룹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노래와 음반를 만드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저는 음악 프로듀서가 아닙니다."

그는 음반 제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그룹의 이미지는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등 홍보와 마케팅을 총괄한다.

HOT의 대성공 이후 97년 S.E.S, 98년 신화의 연속적인 성공은 그런 '분업적 기획' 의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하고 실천한 결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98년 SM을 떠난 그는 ㈜사이더스 창립에 합류하면서 god와 만났다.

"결성을 했지만 모든 것이 불안하던" (god 멤버 박준형) 그들에게 정씨는 특유의 '기획의 힘' 을 불어넣었다.

"멤버 각자에 고유한 이미지와 임무를 갖게 했습니다. 노래 잘하는, 믿음직한 맏형같은, 랩이 특기인, 호감가는 미남인, 모성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

1년 가까이 인기리에 방송 중인 'god의 육아일기' 역시 철저한 기획 작품이다.

"HOT가 강한 카리스마로 10대에게 어필한다면 god는 친근함으로 가족 모두에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아이 기르기는 적합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god는 지난 연말 KBS 가요대상에서 앨범 판매량이 월등히 많은 조성모를 물리치고 대상을 차지했다. KBS는 다른 방송사와 달리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 별로 골고루 선거인단을 구성했고, 그 결과 god는 30대에서만 조성모에 밀렸을 뿐 나머지 전연령층에서 앞섰다. '카리스마보다 친근함' 이라는 기획의 결실이었다.

몰론 이같은 '기획의 성공'에 대해 논란은 있다. 기획으로 '만들어진' 그룹에 생명력이 있는가, 작사·작곡· 연주 실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이들이 대중음악계를 주도해도 되나, 립싱크·일본 음악 표절 등 폐해에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10대 위주의 소모적인 음반 시장을 형성하는 주범은 아닌가 등등.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일은 제작자에겐 생명과도 같은 일입니다. 또 한국의 댄스 음악은 이제 세계 수준입니다. 외국, 특히 일본 대중음악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정해 주십시오. "

그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주먹구구식 소규모 기획과 제작에서 벗어나 더욱더 체계화하고 대기업화해야 옳습니다. 그래야 외국 대형 음반.기획사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대중음악계와 언론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실력있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들과 손잡고 싶습니다. 다만 취미삼아 하는 음악으로는 안됩니다. 철저한 프로 의식이 필요합니다. 방송 등 매체는 유행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대중을 선도하고 설득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실력있는 록 밴드를 많이 소개하면 대중의 유행도 그쪽으로 흐르고 제작사도 그런 그룹 발굴에 힘을 쏟지 않겠습니까? "

다양한 장르, 수 많은 가수, 셀 수 없이 많은 제작·기획사가 뜨고 지는 가요계에서 정씨의 역할을 과장할 필요도 경시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가 기획의 힘으로 가요계에서 거둔 성공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그가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 어떤 기획력을 발휘할 지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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