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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16) 동물 기름을 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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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생각해 보면 신은 인간의 의지를 집요하게 시험하려 든다. 맛있는 음식은 탐식하면 몸에 나쁜 경우가 많다. 소시지와 햄, 마블링이 잘 된 쇠고기와 기름진 돼지고기…. 그런 음식은 대개 고지방식이다.

왜 몸에 특별히 좋다는 음식은 먹고 싶은 욕망이 불처럼 일어나지 않을까. “얼른 귀가해서 맛있는 당근을 먹어야지” 하고 조바심을 내거나 “가출한 아들아, 네가 좋아하는 브로콜리 푹 삶아놨으니 얼른 귀가하렴, 엄마가”, 뭐 이런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확실히 기름기 줄줄 흐르는 지방은 인간의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인류가 탄생하고 식물성 기름이 넉넉해진 시기는 불과 50년도 되지 않는다. 지구인은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까 수만 년에서 불과 50년을 뺀 기간 동안 동물 기름으로 다양한 맛의 세계를 경험했다.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어려서 엄마 심부름으로 정육점에 가면 아저씨가 신문지에 둘둘 말린 비계를 팔았다. 50원어치면 온 가족이 한두 주 동안 온갖 요리를 다 해먹었다. 맛있는 호떡도 누르고, 김치볶음밥도 볶았다. 그때 이른바 (식물성) 식용유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땅콩기름과 들기름이 있었지만 비싸서 쉽게 쓸 수 없었다.

미국산 콩기름이 파격적인 가격으로 수입되면서 한국 기름 시장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동물성 유지는 건강의 적이 돼버렸다. 마침 라면 우지파동이 겹쳤다. 동물 기름은 소비자들로부터 배격되기 시작했다. 짜장면집에 일제히 안내문이 붙었다. “우리 집은 동물성 유지 대신 식물성 기름을 사용합니다.” 국민의 뇌리에 ‘동물성 기름=몸에 나쁘다’라는 등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먹는 문제에 있어 더 민감하다고 할 만한 유럽 선진국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동물성 기름 먹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는 굳은 돼지기름(라드)을 빵에 천연덕스럽게 발라 먹는다. 서민 음식도 아니고, 제법 미식의 축에 든다. 돼지기름은 올리브유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마트에 진열되어 있다. 베이컨과 소금에 절인 지방도 귀한 취급을 받는다. 오리와 소에서 나오는 기름도 맛있는 요리를 위해 애지중지하는 곳이 유럽이다. 지중해식 건강법을 실천하는 이들 나라에서 이런 식품이 인기 있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있음을 시사한다.

식물성 기름은 무조건 친환경적이고 건강 친화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당신이 오늘 저녁에 먹을 고소한 삼겹살도 실은 상당 부분 동물성 기름이 아니던가. 적당히 요리에 쓰면 미식 생활이 훨씬 풍성해질 수 있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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