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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장수 대물림… 농암종가 밥상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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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은 소박했다. 주재료는 채소. 전으로 부치고, 장아찌로 절이고, 찜통에서 쪄 내왔다. 고운 가루처럼 만든 북어 보푸라기와 실처럼 가느다란 다시마 튀김은 오늘의 별미다. 여기에 물김치와 쑥국, 그리고 제사상에 올렸던 북어와 방어를 구워 상을 차렸다. 농암 이현보(1467~1555)의 17대 종손 이성원(59)씨 집의 아침 상이다.

농암종가 아침밥상. 부추찜, 데친 두릅, 장아찌, 전, 다시마 튀김, 북어 보푸라기, 물김치, 방어 구이, 북어 구이(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등과 흑미찹쌀을 약간 섞은 쌀밥, 쑥국을 내왔다. 장아찌는 더덕·곰취·가죽(참죽의 새순)·매실 등 네 가지, 전도 호박·두릅·표고·우엉 등 네 가지다.[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농암 가문은 예부터 이름난 장수 집안이다. 농암 이현보는 89세, 농암의 아버지는 98세, 어머니는 85세, 조부는 84세, 증조부는 76세, 고조부는 84세까지 장수했다. 또 농암의 동생 현우 91세, 현준 86세, 농암의 아들 문량 84세, 희량 65세, 중량 79세, 계량 83세, 윤량 74세, 숙량 74세 등 기록은 이어졌다. 조선 시대 평균수명이 40세 남짓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이적인 수치다. 장수의 전통은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종손 이성원씨의 아버지는 91세, 어머니는 89세까지 수명을 누렸다. 농암 종가만의 장수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경북 안동 농암 종택을 찾아간 이유였다.

농암 종택이 있는 마을은 ‘가송리(佳松里)’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수려했다. 강호 시인 농암이 “굽어보니 천 길 파란 물, 돌아보니 겹겹 푸른 산…”이라며 ‘어부가’를 불렀을 법한 곳이다.

“욕심을 버리고 살아서겠죠.”

장수 비법에 대한 종손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러면서 제철 음식으로 차린 담백한 밥상을 보여줬다. 진귀하고 기름진 재료는 아예 없었다. 600여 년을 이어온 농암 종가의 밥상을 현재 책임지고 있는 이는 종부 이원정(53)씨다.

“음식에 콩가루를 많이 써요. 간은 집간장으로 하고. 우리 집 간장은 안 끓인 생간장이죠. 김치는 1년에 한 번, 김장 때만 담가요. 가을배추는 농약을 안 쳐도 되고, 달고 맛있거든요. 요즘은 딱 장아찌 담글 때네요….” 종부는 약보(藥補)보다 한 수 위라는 식보(食補) 비결을 공개했다.

농암 종택은 고택체험용으로 일반에 열려 있다. 종부가 직접 차린 ‘장수 밥상’은 매일 아침 농암 종택 투숙객들도 함께 먹는다. 밥값은 1인 7000원(미취학 어린이는 3000원). 80세 이상 부모와 함께 온 가족에게는 무료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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