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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푸틴, 첫 작품은 반푸틴 탄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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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푸틴

중국 천안문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 모스크바 민주화 시위대 사진 한 장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무장한 러시아 경찰특공대(OMON) 대원들이 가로막고 있는 길 한가운데에 네 발 자전거를 탄 어린이. 1989년 6월 5일 천안문 사태 때 네 대의 탱크를 맨 몸으로 막아 섰던 중국 민주화 운동가 왕웨이린(王維林)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 사진은 블리디미르 푸틴(60) 러시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7일(현지시간) 러시아 시내에서 촬영됐다. 미국 포린폴리시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에 기고하는 모스크바 거주 자유기고가 줄리아 이오페의 작품이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러시아판 천안문 사태’라는 이름으로 이 사진이 퍼져나가고 있다.

 푸틴의 취임식이 열린 이날 모스크바 시내에는 반(反)푸틴 시위대 5만 명이 모였다. 1000여 명의 시위대는 크렘린궁으로 향하는 푸틴의 자동차 행렬을 막으려고 기습 시위를 벌였다. 수천 명의 경찰이 달려들어 이들을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이 체포됐다.

 푸틴 정권은 또 9일 민주화 시위 주동자 격인 알렉시 나발니와 세르게이 유달초프을 구속했다. 나발니는 유명 블로거다. 지난해 부정 총선 이후 시민의 공분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좌익 정당 러시아연합노동전선의 의장인 유달초프 역시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각각 15일간 구금될 예정이다.

 반푸틴 시위가 확산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시위 중 구금됐다 풀려난 야당 지도자 드미트리 구드코프(정의러시아당)는 “사람들은 더 이상 구금이나 곤봉 진압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강경 진압은 국민의 화를 돋울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 영자지 모스크바 타임스는 “이번 시위는 푸틴 취임으로 인한 일시적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시위가 곧 진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푸틴은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G8 정상회의에 참석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푸틴은 9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새 내각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며 유감의 뜻을 전했다고 백안관 측은 밝혔다. 이에 따라 오바마와 푸틴의 만남은 6월 18, 19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로 미뤄졌다.

 ◆푸틴 “도덕적 권리” 발언에 외신 질타=푸틴은 9일 전승기념일 연설에서 서방 세계에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그는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폭압을 물리치고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낸 ‘도덕적 권리(Moral Right)’을 갖췄다”며 주권과 국제규범의 준수를 강조했다. 이에 영국 더타임스는 “푸틴의 발언은 시리아·이란 등 중동 문제에 서방 국가들이 적극 개입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며 “푸틴이 국내의 민주화 요구는 외면한 채 국제문제에서만 ‘도덕적 권리’를 강조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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