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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 못난 짓 했는데 내가 대신 참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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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8일(음력 4월 8일) 불기(佛紀)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참된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스님은 나와 너, 인간과 생물의 경계가 없는 세상을 얘기했고 마침 불거진 조계종 스님의 도박 논란에 대해서도 호되게 꾸짖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행복’이라는 글자조차도 (내 안에는) 없소.” 불교 조계종 제13대 종정 진제(眞際· 78) 스님의 일성이다. 28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올 3월 종정으로 추대된 진제 스님이 언론과 마주하기는 처음이다.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스님은 한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이다. 성철(性澈) 스님과 함께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꼽혔던 향곡(香谷) 스님의 선법을 물려받았다. 1시간 동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과 ‘참나(참된 나)’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인간 내면 세계는 깜깜 절벽이다. 간화선에선 모든 인류가 평등하다”고 말했다.

 -하루 일과는 어떤가.

 “(보통) 절집하고 다르지 않다. 새벽 3시, 10~20분 전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진리를 알게 해달라, 일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지혜를 느끼게 해달라, 개개인의 마음에 참 부처가 갖춰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다.”

 - 간화선의 세계화를 선언했다.

 “동양의 정신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에 역점을 두고 싶다. 간화선은 8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도 없고 중국, 동남아에도 없다. 개개인과 천하의 모든 것은 평등하고 동일하다. 그렇다면 갈등이 있을 수도 없다. 세계 속에 (간화선)을 전파해 다 같이 극락세계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진리의 눈이 열리면 세계는 하나다. 그러면 갈등이 없다.”

 우리 불가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남진제 북송담’이다. 남쪽에는 대구 동화사 진제 스님이, 북쪽에는 인천 용화사 송담(松潭) 스님(84)이 대표적인 선지식(善知識·수행이 깊은 스님)이라는 이야기다.

 -간화선이 일상에 도움이 되나.

 “생활선을 하면 다툴 일이 없다. 이 이상의 선물은 없다. 그래서 간화선을 잘하면 부부지간에 허물이 안 보이고 싸움이 없어진다. 화두를 들고 있으면 남편이 술을 먹고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지에 대한 불안함이 사라진다. 마음의 갈등이 없어지니 학생들은 공부가 더 잘 될 거다.”

 -스님의 참나를 설명해달라.

 “(목소리를 높이며) 마음, 마음, 마음이여 가히 찾기가 어렵도다. 찾으려고 한 것은 천리, 만리 밖에 있도다. 무심히 앉아 있으니 마음도 무심히 앉아 있도다. 모든 대중이여 참나를 바라보고 있어라. 모든 대중이시여 참나를 찾아라.”

 스님은 자신감이 넘쳤고 말은 빨랐다. 학교폭력 등 각종 문제를 풀어가는 방도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차분하게 말했다.

 “첫째,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야 한다. 둘째,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이웃어른을 공경하라. 셋째, 친구를 사귐에 있어 믿음·사랑·존경으로 대해라. 넷째, 맡은 바에 성실과 정성을 다해라. 다섯째,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다른 생물을 존경해야 한다. 새와 사람이나 다 (똑같이) 존경해야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는 새나 사람이나 모두 눈물을 흘린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가 있고 나서야 세계 평화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연말 대통령 선거가 있다. 어떤 기준으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가.

 “대통령에 나오는 분들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세계평화에 기여를 해야 한다. 부정부패를 해서 언론이 노출되기도 하는데 가진 사람들이 손을 내미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분단이 되면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해야 한다. 대포와 총·칼을 모두 던져서 녹여야 한다. 상부상조라는 것을 남북 모두 마음에 간직하도록 하자.”

 진제 스님은 이날 조계종 스님들의 도박 파문에 대해 “못난 짓을 했는데 내가 대신 참회한다”며 용서를 구했다.

 -일부 스님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중생은 돈을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한다. 가지려고 하는 것, 그게 중생의 업이다. 삭발염의(削髮染衣)를 해서 출가를 하고 시줏밥을 먹고 살아도 이전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절에 머물지만 중생의 습기(習氣·습관)에 놀아나는 이들이다. 옆을 돌아보지 않고 위대한 부처가 된다는 신념을 가진 자만이 세상 일에서 멀어질 수 있다. 중이 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도인이 되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구=

◆종정(宗正)=조계종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 종단 행정은 총무원장이 책임져 실권은 없다. 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 등 주요 행사에 법어(法語)를 내린다. 스님들에 대한 포상·사면권 등을 갖고 있다. 임기는 5년,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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