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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입양아 수만 명 돌본‘의사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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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입양은 버려진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마지막 희망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버려진 아이들이 입양되기 전까지 진료를 맡아온 홀트일산복지타운 조병국(78·여·사진) 부원장은 입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6·25 전쟁 이후 해외입양이 본격화 됐을 때부터 입양 아이들의 건강을 챙겨온 국내 입양 역사의 산증인이다.

 연세대 의대(소아과)를 졸업한 뒤 녹번동의 홀트아동복지회 고아원에서 1년간 근무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조씨는 서울 시립아동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수련을 하며 수천 명의 고아를 돌봤다.

1972년엔 450병상의 병원에 고아 2300명이 찾아올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아프고 외로운 아이들이 병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거나, 입양을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병원에서 아픈 아이들을 진료하며 그는 주말마다 고아원을 찾아 입양을 앞둔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러다 74년엔 시립아동병원 소아과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예 홀트회로 직장을 옮겼다. 소리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언젠가 찾아와줄 양부모를 기다리는 입양아 수만 명이 조씨의 손길을 거쳐 갔다.

 한때 그도 유난히 한국 아이들을 좋아하는 해외 양부모들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혹시 팔아넘기거나 학대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미국의 입양기관을 방문해 한국 출신 입양아들의 밝아진 표정을 확인한 뒤부터는 마음을 놓았다. 친부모가 포기한 장애나 희귀질환을 가진 아이들도 입양 가정에서 잘 자라 성인이 되어 모국을 찾는 모습도 여러번 봤다. 그는 “작고 말랐던 아이들이 멋지게 성장해 자기처럼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찾아올 때면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가 봉사하는 홀트복지타운에도 입양아 출신 봉사자들이 여러명 찾아와 입양되지 못 한 장애아들을 돌보고 있다.

 ‘한국이 입양아 수출국으로 불릴 정도로 해외입양이 많은 것은 문제 아니냐’고 조씨에게 물었다. 그는 “말로만 아동인권이니 해외입양이 너무 많다느니 주장하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버림받은 이 불쌍한 생명이 한 번이라도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기회가 입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11일 제7회 ‘입양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을 받는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고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운동에 나선 27명에게도 대통령·국무총리·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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